11월의 산(무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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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내가 여러 지기나 후배들 중에서 호남에서는 남해바다를 끼고 발전한 이 고장 인물들을 유심히 눈여겨 보고 왔다. 외모도 준수하거니와 서예나 예술에 뛰어난 재질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기대되는바 크다. 요즘 광주의 다방엘 들르면 서예나 동양화의 전시장과 같아 과객을 놀라게 한다. 뒷날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인재는 바로 여기서 나오려니 기대된다. 과연 어딘가 특이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런점을 산수에서 찾는것도 옛날의 태도이려니하지만 나는 광주에 여러차례 들렀다.
그러면 일이 끝날 무렵 지기들은 나를 무등산으로 안내한다. 내 직업이 문헌을 상대로 캐고 찾아내는 것이니 그 버릇을 어찌쉽사리 버릴수 있으랴. 무등산은 광주시의 동남에 위치한 1천1백87m의 산이다. 서울의 백운대보다 훨씬 높다. 이 산은 백제시대에는 무진산이라고 하고, 신라시대에는 서석산이라고 불렀다고한다.
무등산은 광주에서 오르는 길이 멋지다. 부드러운 경사의 구릉은 이리 휘고 저리 돌아 비탈길을 오르는데 그 오르는 길만도 멋지다. 한편으로 시가가 내려다보이고 한편으로 길가의 울타리형 나무들이 이채롭다.
이 길이 거의다 끝날 무렵, 그 거리에는 산장형 또는 휘테형 휴게소가 있는데,간이식당도 되고 숙박도 가능려니한다. 나는 이집이 마음에 든다. 항상 이 집에 들르면 한 보름쯤 푹박혀 원고나 쓰면서 묵고싶다. 아침·저녁 등뒤에 무등산이나 오르 내리면서.
무등산은 흙산이다. 북한산같이 돌산은 아니어서 밟는 발의 촉감이 색다르다.그러나 정상의 천왕 지왕 인왕의 세 봉우리는 선돌이 쌓인 것이고 이 밖에 삼존석을 비롯해서 송하·광석·풍혈…등 열 개의 바위가 기암괴석을 이루고 병풍같이 둘러싸여 돌무더기의 색다른 풍치를 이루고 있다.
나는 바쁜 몸이라서 과객의 신세로 마음으로는 샅샅이 찾아 보고 싶지만 으례 겉만 훑어 보고 오는 꼴이라서 큰 소리를 칠수가 없다. 지금은 정상에 오르지 못하게된것이니 중턱으로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그러나 중턱도 좋다.
멀리 남쪽은 바다로 뻗어난 산줄기가 넘나들고, 사이사이에 바닷물이 반사를해서 가끔 번쩍인다. 그위의 대기는 회색빛 안개를 일구어 농염을 이루며 조화를 보이고 있다. 일면 부드럼고, 일면 묵묵불언하는 거인의 이모습은 무등산을 배경으로 해서 전개되는 것이다. 광주 예술인의 마음대로 이 무등산의 얼과 멋이 간직된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숭녕<백제문화개발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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