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 문밖출입 안시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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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가 지기전인데도 아이들로 복작거리던 골목·길거리가 텅비어 있었다. 대신 동네 아주머니들만 싸전·식품점·약국등에 모여 겁먹은 얼굴로 수군거리고있었다. 같은 또래의 세어린이가 이름도 원인도 모르는 병에 걸려 며칠사이에 같은증세로 이 동네에서 숨졌다는 사실에 이들은 엄칭난충격과 공포에 휩싸여있었다.
서울창3동 동사무소앞 신창국교주변은 공장하나 찾아보기 힘든 주택가. 마을뒤편에는 나지막한 초안산이 자리잡고 앞쪽으로는 우이천이 흔르는 서울변두리의 전형적인 서민마을이다.
평화롭고 고요하던 동네는 3명의 어린이가 숨지면서 온통 수라장이됐다.
동네 진미통닭집 주인 현악경씨(29·여)는 아들 이석근군(7)을 지난달31일 경기도연천의 할아버지댁으로「피접」보냈다. 운전사인 박모씨(37·창3동538)는 4일상오 정환군(6), 신환양(5)남매를 시골 친척집으로 내려보냈다.
또 최영식씨(37·회사원·창3동539)는 딸 유진양(5)을 수유동 친척집으로 보냈다. 유진양의 어머니 한영호씨(35)는 『딸이 동네사람들의 눈에 띄지않자 유진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 가슴이 철렁했고 꿈자리마저 뒤숭숭해 일거리가 손에 안잡힌다』고 한숨지었다.
구멍가게인 신창상회 주인 태장성씨(59)는 『최근 가게매상이 절반이하로 줄었다』며 근처 복덕방에도 집을 보러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태씨는 시집간 딸이 외손자와 함께 친정에 오려는것을 당분간 오지말라고 급히 연락하기까지 했다는것.
부모들은 꼬마들의 문밖출입을 꺼려 동네 유치원이나 유아원이 한산해졌고 꼬마들의 놀이터이던 학교앞 「어린이 보호구역」이 조용하기 짝이 없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뒷산의 약수때문이라는둥 숨진어린이가 10명쯤이라는둥 별의별 근거없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아 어느 통장은 취재진에게 『진짜로 몇명이 죽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전문지식이 없는 주민들이 궁금증을 풀기위해 몰리는 곳은 이 동네의 약국들.
시민약국 주인 원귀만씨(47)는 『하루에도 수십명씩 몰려와 발병원인과 예방책을 묻고 있으나 정확한 대답을 해줄수 없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안타까와했다.
또 사슴약국 주인 이영희씨(35·여)는 『아이들이 감기기운만 있어도 혹시나하여 주민들이 안절부절못하지만 약사로서도 섣불리 약을 지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국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가족계획으로 둘만 낳았는데 불행한 일이 있을까 무섭기 짝이없다』며 혹시 전염병이나 아니냐고 묻고있었다.
9통장 박동철씨(46)는『불안에 뗘는 주민들을 진정시킬수 있는 대책을 관계당국에서 빨리 마련해야한다』고 말하고 발병원인을 우선 밝혀낼것을 요구했다. <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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