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메이저리거만 4명 … 미국도 놀란 광주일고의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2002년 광주일고 모임에서 만난 `메이저리거 3인` 최희섭·서재응·김병현(왼쪽부터). [중앙포토]

‘강정호는 광주일고 출신의 네 번째 메이저리그 선수다.’

 지난달 17일 강정호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계약하자마자 메이저리그(MLB) 홈페이지는 광주일고를 언급했다. 광주일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알아주는 야구 명문이다. 야구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전·현 메이저리거들의 출신 고등학교는 1만2695개다. 네 명 이상의 빅 리거를 배출한 학교는 605개. 광주일고는 상위 4.8% 안에 든다. 일본 최고 야구 명문고인 오사카 PL학원 출신 메이저리거도 구와타 마쓰미(47)·마쓰이 가즈오(40)·후쿠도메 고스케(38)뿐이다.

 1994년 박찬호부터 2015년 강정호까지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총 15명이다. 광주일고 출신 서재응(38·1997년 진출)·김병현(36)·최희섭(36·이상 1999년)은 2000년대 초반 빅 리그에서 나란히 활약했다. “세 선수가 1~3학년으로 학교를 함께 다녔다”는 한국 기자의 말에 미국 기자가 “농담하지 말라. 그게 사실이라면 그 학교는 세계 최고의 야구 명문”이라고 말한 건 유명한 일화다.

 셋이 함께 뛰었던 95년 광주일고는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덕수상고(현 덕수고)와의 결승전에 2학년 김병현이 선발 투수로 나섰고, 3학년 주장 서재응은 3루수를 봤다. 1학년 막내 최희섭은 4번타자로 활약하며 우승기를 흔들었다.

 당시 광주일고 사령탑이었던 허세환(54) 인하대 감독은 “난 복 받은 감독이다. 그저 좋은 선수들을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동열(54) 전 KIA 감독과 광주일고 동기인 그는 학창 시절 무릎을 다쳐 프로에 진출하지 못했다. 대신 92년 아마추어 지도자로 나서 세 선수를 메이저리거로 키워냈다.

 허 감독에 따르면 최희섭은 투수 재능이 뛰어났다. 서재응·김병현이 졸업하면 최희섭을 에이스로 쓸 생각을 했다. 그러나 큰 체격(키 1m96㎝)에서 나오는 파워가 아까워 타자로 뛰게 했다. 김병현은 중학교까지 유격수로 뛰었다. 송구 능력이 워낙 뛰어나 투수로 테스트했는데 엄청난 공을 던졌다. 서재응 역시 중학 때까지 3루수를 봤지만 투구폼이 간결하고 부드러워 투수로 전향했다.

 허 감독은 강정호의 첫인상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정호는 강한 어깨를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공을 잡고 던지는 연결 동작이 매우 빨랐다. 타격 재능도 뛰어나 꼭 스카우트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강정호는 팀 사정에 따라 유격수는 물론 투수·포수·외야수로도 뛰었다. 김선섭(42) 광주일고 감독(당시 광주일고 수석코치)은 “고교 시절 유격수만 봤다면 정호는 박진만을 능가하는 유망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정호가 프로 입단 후 수비가 약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정말 잘 성장했다”며 고마워했다.

 메이저리그 밖에서도 광주일고의 명성은 놀랍다. 선동열과 이종범(45·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1990년대 말 일본 주니치에서 활약했다. 지난해 201안타를 치며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가 된 서건창(26·넥센)도 동문이다. 염경엽(47) 넥센 감독과 김기태(46) KIA 감독도 광주일고의 간판이었다.

 허 감독은 “광주의 야구 열기는 대단하다. 운동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라면 야구부터 시킨다. 이 때문에 광주에서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선배들이 시간을 쪼개 후배들을 찾아 지도하고 격려하는 게 광주일고의 전통이다. 성공한 선배들을 보며 후배들이 꿈과 희망을 키운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