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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관계 격하만으론 미얀마 참사인적 불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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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버마정부의 미얀마참사진상 및 대북한제재조치의 공표가 임박해짐에 따라 외교관계에 관한 각종 제재수단 및 그 효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버마참사와 관련, 버마가 북한과의 대사관계를 영사관계로 격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랭군발외신은 여러모로 음미할만 하다.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이 사건이 북한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미얀마가 대북한 단교조치를 통해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에 대해 진사겸조문사절로 방한했던 「우·치트·라잉」 미얀마외무장관은 제3국이 버마의 주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우리의 단교요구에 부응할 것 같은 시사를 했었다.
그러나 버마정부는 아직도 진상공표를 미루면서 외교관계 격하설을 유포시켜 공식발표에 앞선 충격완충 조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관측을 낳고있다.
물론 대사관수준에서 영사관수준으로의 외교관계 격하는 단교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원래 영사관계설정은 미수교 상태에서 양자간의 관계개선을 위한 전단계조치다. 우리와 이집트·파키스탄 및 이라크 관계가 바로 그런 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버마가 만일 북한과 단교하되 영사관계를 유지할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측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려는 것으로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얀마가 ▲외국 국가원수나 외교사절의 신변을 보호할 의무이행에 실패했고 ▲더구나 자국의 일부관리가 북한의 만행에 동조한 사실에 비추어 그 같은 조치로는 버마가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한 것으로는 인정받기 어렵다는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영사관계의 유지는 외교관계는 없어도 양자간에 인적교류 및 경제협력관계는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같은 중대한 사안에 대해선 당연히 인적왕래의 금지를 포함하는 단교라야 마땅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자관계의 외교적 제재수단으로는 ▲국교단절 ▲국교동결 또는 중단 ▲관계 격하 ▲공관철수 ▲삼대국 대사추방 ▲자국대사 소환 ▲공관원 일부추방 ▲공관원 제한등의 순으로 강도가 떨어진다.
근대사회에서는 영국이 1720년 러시아와 단교한것을 시발로 전쟁을 하지 않는 수단으로 양자관계의 불만을 처리하는 가장 강도 높은 외교적 제재수단이 돼왔다.
단교사유의 유형을 보면 ▲영국과 미국이 각각 51년과 78년 두 차례의 이란혁명을 방해한 혐의로 이란으로부터 축출당한 것처럼 주권침해 또는 내정간섭에 대한 불만표시 ▲사우디아라비아가 56년 수에즈 위기때 영·불과 단교한 것처럼 자국에 간접적 피해가 오는 제3국에 대한 부당한 행위에 항의표시 ▲65년 7개 아프리카국가들이 영국의 로디지아정책에 불만을 품고 단교한 것처럼 자국과는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으나 외국정책에 대한 이념적 항의표시등이 있다.
그밖에도 이집트는 67년 6월전쟁때 미·영전투기들이 이스라엘을 거쳐 요르단을 공격한다는 완전한 허위정보에 따라 양국과 단교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국교동결 또는 중지는 양자관계의 분쟁에 대한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국교재개 가능성을 둔채 일시적으로 외교관계를 중지하는 행위로서 통상 어느 일방에 의한 일방적 행위로 나타난다. 미국은 51년 불가리아가 미국외교관의 활동을 제한하고 미국을 중상모략한다는 이유로 불가리아주재 미대사관을 철수시켰다.
단교와 법적효과는 비슷하나 한등급 떨어지는 조치다.
공관철수의 예는 북한은 75년 호주가 유엔에서 한국을 지지했다해서 주호주공관을 철수했는데 이는 국교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 북한은 또 71년 스리랑카 공산쿠데타조종혐의로 스리랑카로부터 공관철수령을 받았다.
대사관의 영사관 격하는 국교는 단절돼도 실질적인 외교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 국교동결보다는 약하고 공관철수보다는 강한 조처다.
대사추방도 상대방에 대한 강한 불만표시이며 이를 당한 국가는 국제적인 체면이 크게 깎이는 일이다. 지난 봄 북한의 핀란드주재대사 유재성이 IPU서울총회저지를 위해 핀란드의원들을 매수하려 했다는 혐의로 쫓겨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자국대사소환의 경우는 국제사회에서 비일비재한 일로 어떤 분쟁이 해결되거나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그런 조처는 해소되는 것이 통례다.
공관원 추방조처는 주로 동선간의 첩보행위협의 또는 반정부 선동혐의를 받아 기피인물로 지목돼 쫓겨나는 경우로 최근에도 소련외교관들이 프랑스·서독·영국등에서 대거 추방당한 바 있다. 이같은 사례가 다발적으로 빈번해질 경우 공관원수를 제한하는 제재초치를 취하기도 한다.
버마가 버마참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북한과 단교할 것은 확실시되나 그 형태가 영사관계의 유지로 낙착된다면 북한이 그 조치를 받아들이든 안받아들이든 간에 우리로서는 만족할 만한 조치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전에 이에 대한 정부의 최선의 외교적노력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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