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대부" 두 사채업자|「영동」어음할인 20억 번 이재식·윤문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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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흥은행 중앙지점이 지급보증 해준 어음을 사채시장에서 할인해온 사채중개인 이재식(57) 윤문섭(55·수배중)씨등 2명은 그 동안 사채시장의 「얼굴 없는 대부」로 군림해 왔다.
사채시장이란 원래 전주나 중개인 모두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속성. 이 때문에 한 단계만 건너 뛰어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윤씨 두 사람은 이점에서 예외로 통했다.
웬만한 전주들은 두 사람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영동개발진흥의 지급보증어음이 두 사람을 통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최근엔 문제의 어음이 「이선생 어음」 「윤선생 어음」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일부 전주들은 3∼4단계의 중간브로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이들과 직거래.
중간수수료를 졸이고 높은 이율을 받기도 했다는 것.
이같이 두 사람의 「얼굴 없는 명성」이 사채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이들이 취급해온 어음이 A급 진성어음과 마찬가지로 「틀림없는 어음」으로 3년여 동안 거의 일정한 루트로 유통됐기 때문.
특히 올들어 사채시장에서 유통된 지급보증 어음은 영동개발진흥(주)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나돌았으며 두 사람의 하수인들이 전주들에게 어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이씨 어음」 「윤씨 어음」이라고 이름을 붙여 거래해 왔다는 것.
이·윤씨 두 사람은 각자 10여명씩의 하수인을 거느리고 이들만을 상대하다시피 했다.
하수인들은 다시 각자 여러 명의 하부조직을, 이들은 또다시 많은 하부조직을 두고 두 사람으로부터 나은 어음을 전주 손에 쥐어주는 등 3∼4단계를 거쳤다.
영동개발의 이복례회장과 두 사람이 관계를 맺게된 것은 특별한 관계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 오랜 「어음」거래에서부터 비롯됐다.
개성사범을 나와 한때 교사를 지냈고 증권회사 간부로도 활약한 윤씨는 70년 초반부터 사채중개에 손을 댄 이 계통의 베테랑. 그러나 이씨는 장인 김모씨가 지난해 11월 사망하기 전까지는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쳐온 교사였으나 장인의 사채시장기반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처음부터 거물로 행세했다.
이씨는 사채개개로 번돈으로 다동과 비원 앞의 싯가 10억원짜리 4층 빌딩 2동을 매입, 최근엔 영동사무실에서 다동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사채시장의 할인율은 어음종류와 은행금리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최근 A급 진성어음과 영동 측의 지급보증 어음은 1.7% 내외였다.
이씨와 윤씨는 자신의 사채하수인들에게 넘기며 0.5%선의 수수료를 떼였고 하부브로커들 역시 0.5%쯤씩 자기 몫을 매었다.
사채시장에서 할인율은「몇 살』 이란 은어로 통한다. 1.7%면 『17살』. 영동 측에 17살에 나온 어음은 몇 단계를 거쳐 전주 손에 왔을 때는 『15살』이나 『15살반』으로 젊어지게 된다.
각 4백여억원 씩의 어음을 유통한 두 사람은 가만히 앉아 3년 동안 20여억원씩을 번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강남에 사무실을 두고 이회장의 여비서가 전해준 어음을 전화로 하수인을 불러 건네준뒤 현금을 받아 다시 여비서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끝냈다. 이씨집인 역삼동 개나리아파트의 이웃주민들은 이씨가 아침 9시면 고급승용차를 타고 출근하고 저녁 6시면 어김없이 퇴근, 큰 회사 간부급인줄로만 알았다는 것.
이에 반해 수배중인 윤씨는 이웃(혜화동)주민들까지 사채중개인으로 알 정도의 사채 베테랑으로 친척인 윤모씨(S실업사장)도 사채중개인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다.
윤씨의 어음개척 능력이 뛰어나고 발이 넓으며 취급어음의 신용도가 높아 조무래기 브로커들은 윤씨의 하수인 되기를 소원할 정도였다는 것.
현재까지 검찰수사망에 걸려든 이·윤씨의 사채하수인은 모두 40명. 이중 6명은 명성사건때 걸려 들었던 사채업자.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윤씨가 달아나 윤씨의 하부조직과 전주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이씨와 거래한 전주 중에서도 하수인 10명중 3명 밖에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전체 전주들에 대한 숫자파악 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일에 걸친 검찰수사에도 전주들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들이 단기금융업법에 저축돼 형사처벌을 두려워하기 때문.
이들처럼 허가 없이 금융업을 했을 경우 단기금융업법에 따라 최고 징역 2년 또는 벌금 2백만원을 물게돼 있다.
더구나 세무조사·자금출처추격을 당하면 더욱 큰 손해가 예상돼 상당수의 전주들이 끝내 어음을 포기하고 말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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