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예의 없어” “경주, 고리타분” … 불편한 이웃 손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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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사람들은 예절을 모른다. 한때는 그쪽과 혼인도 하지 않았다.”(경주 유림단체 대표 A씨·75세)

 “경주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포항시 공무원 B씨·57세)

 경북의 이웃 포항과 경주는 한국의 산업과 역사를 대표하는 도시다. 하지만 사이는 좋지 않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서가 강하다. 경주는 포항에 대고 “예의범절 모른다”고 하고, 포항은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는 경주의 유림들을 “고리타분하다”고 한다.

 그런 두 도시가 손을 잡았다. 이강덕(53) 포항시장과 최양식(63) 경주시장이 지난 12일 경주시청에서 만나 산업·연구·관광 등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동반성장 협약을 맺었다.

 원래 경주는 포항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신라 1000년 중심지였고, 고려시대에도 ‘동경(東京)’, 조선시대에 영남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경주가 경북의 제1도시였다.

 하지만 1960년대 포항제철이 세워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화가 진척되면서 돈과 사람이 포항에 몰렸다. 현재 인구는 포항이 52만4000명, 경주 26만1600명으로 포항이 경주의 약 두 배다. 2014년 기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역시 포항이 3322만원으로 경주(2809만원)보다 18% 많다. 포스텍이 생기고 포항제철고가 자립형사립고로 자리 잡으면서 포항은 교육도시로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역사·문화·전통을 자랑하던 경주 역시 뒤질세라 경제력 높이기에 나섰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수용해 약 3000억원 가까운 정부 지원을 이끌어 냈다. 이를 통해 양성자가속기를 유치했다. KTX 신경주역도 짓게 됐다.

 그 과정에서 포항과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경주가 양성자가속기와 KTX 신경주역을 포항에서 먼 쪽에 유치한 것을 놓고 포항에서 불만이 터졌다. 상당수 시민들은 감정적으로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경주에 집을 둔 이들이 포항으로 출근하고, 포항 시민들은 특급 호텔이 있는 경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6·4 선거에서 이강덕 포항시장이 취임하면서 “경주와 손을 맞잡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산업·교육 도시인 포항과 역사·문화·관광 도시인 경주의 장점을 결합해 동해안 중심도시로 커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엔 더 남쪽의 이웃 울산이 자동차·조선·정유 산업과 고래·암각화 같은 관광자원을 활용해 쑥쑥 커 가는 데 대한 경쟁 심리 역시 작용했다. 경찰 출신인 이 시장이 옛 행정자치부 관료인 최양식 경주시장과 교분을 쌓았던 것도 바탕이 됐다.

 두 시장은 지난해 취임식 직후 각각 실무팀을 만들어 협력 사업을 검토했다. 1차로 지난해 11월 최 시장이 포항시청을 방문해 두 도시를 거쳐 흐르는 형산강 걷기 코스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이번에 아예 동반성장 협약까지 맺게 됐다. 12일 행사에는 두 도시의 간부 공무원 100여 명이 함께했다. 원자력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를 경주에 유치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선언문까지 채택했다.

 최양식 시장은 “신라시대까지 포함해 두 도시가 협력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강덕 시장은 “경주는 한 해 1300만 명 관광객이 찾고 있다”며 “경주의 역사관광 자원과 포항의 해양관광 자원을 결합하면 두 도시가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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