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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메밀꽃 … 허생원이 떠오르는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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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화보 지면이 있었던 1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아이디어를 제시해 채택된 기자에게는 1주일 동안의 자유 취재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일반 취재에서 열외가 됩니다. 대신 화보(畵報)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어 와야 합니다. 한 면을 털어 내 사진을 싣는다는 것은 ‘영광’인 동시에 ‘부담’이었습니다. 조금 진부한 주제인 ‘전통 5일장’을 냈는데 덜컥 채택이 되었습니다. 그 길로 출장길에 나서 전남 해남장(1, 6일)을 시작으로 장흥(2, 7일)∼곡성·구례(3, 8일)∼남원·옥과(4, 9일)까지 남도 바닥을 훑으며 ‘장돌뱅이 취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 봉평장(2, 7일)을 다녀왔습니다.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라는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하지요. 그러나 여름 장보다 더 황량한 것이 겨울 장입니다. 날이 밝은 지 오래됐지만 듬성듬성 빠진 이처럼 아직 좌판을 펴지도 않은 곳이 많았습니다.

차가운 시골 공기를 피해 차에서 좀 쉬기로 했습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려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을 만났습니다. 장터 인근 아파트 외벽에는 8~9월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소설 속 허 생원과 동이가 걸었을 법한 그 길 앞에는 그림 속으로 막 출발할 것 같은 트럭 한 대가 서 있습니다. 나귀가 트럭으로 바뀌었을 뿐 아직도 허 생원이 성 서방네 여인을 잊지 못해 봉평과 대화를 끊임없이 오갔던 것은 아닌지…. 참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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