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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자 13명의 프로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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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함병춘 비서실장>
「80연대 세계인물」 선정도
함비서실장은 미노드웨스턴대를 거쳐 하버드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국제정치학자출신. 소탈한 그의 풍모는 관료라기보다는 학자의 체취를 더 풍겼다.
연세대에서 교수로 근무하다가 70년 청와대특별보좌관으로 발탁돼 관계와 인연을 맺었다. 박동선사건·철군등으로 한미관계가 어려웠던때 주미대사를 역임했고 그후 다시 대통령특별보좌관을 하다가 10·25후 대학으로 되돌아갔다가 지난해 6월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다.
함실장은 타임지가 80년대를 움직일세계의 1백인중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선정할만큼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심효식여사와 2남.

<서석준 부총리>
큰그룻 기대했딘 엘리트
최연소부총리로서 젊지만「큰그릇」으로 기대를 모았던 그가 불과 취임3개월만에 변을 당했다.
기획원 과장시절부터 대통령에게 직접 브리핑을 했을 정도로 일찍부터 엘리트경제관료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상공부장관에서 물러난후 도미류학, 모교인 밴더빌트대학으로 가기직전 하와이대학도서관에서 부총리로 발령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귀국했었다.
부총리취임이후 매주 토요일 학자들과 만나 주요정책과제를 자유롭게 토론하며 폭넓게 대화, 새로운 경제구상을 짜나가다 미쳐 뜻을 펴보지 못하고 타계했다.

<김재철 경제수석>
개혁기 경제정책 주도
경제학박사출신의 경제관료로서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저물가·저금리·저임금을 기초로한 일련의 안정화시책 연출자.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이나 일단 옳다고 생각하는바를 밀어붙이는데는 남다른끈기와 추진력이 있다.
서울대문리대 정치과졸업후 잠시 한은에근무하다 도미 유학, 스탠퍼드대에서 학위를 땄고귀국하여 청와대비서관·기획원기획국장등을 역임했다. 10·26후 국보위 경료위원장으로서 개혁기의 경체정책을 주도했고 실명제등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론에 밝은 수재형으로 설득력이 있고 사생활이 매우 깨끗하다.

<이범석 외무장관>
북방외교 개척에 노력
71년 남북적회담수석대표를 맡아 일약국제적으로 유명해진 이장관은 역대 어느 외무장관에 비해 많은 대형사건을 겪었다. 6척거구지만 세밀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이는 꼼꼼한 성격. 장관취임이후 정도외교를 주장해 남북한분단상황을 이용하려는 일부 국가의 행태에 맞섰으며 남북대화경험을 토대로 중소와의 관계개선을 추구한 북방외교개척에 노력했다.
적십자사에서 50년대말 외교관으로 전신, 의전실강·튀니지대사· 남북적회담수석대표· 주인대사를 거쳐 통일원장관·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
평양부자집에서 태어난 모나지않은 성격.
유족은 이정숙씨(55)와 1남4녀.

<강인희 농수산차관>
농기계 보급에 큰 역할
차관4년동안 궂은 일을 도맡아 왔고 아래위의 가교역할을 했기때문에 「농수산부의 어머니」로 통한다.
주이탈리아농무관등으로 외교를 많이해 화내는법이 없으며 원만한 대인관계를 통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시마리를 풀어나간다.
70년대중반 농업개발국장때 장차 농촌일손부족을 예견, 경운기·이앙기등 보급에 앞장섰고, 80년흉작때는 미국과 일본에 건너가 쌀확보문제를 해결했었다.
대통령수행은 지난번 아프리카에 이어. 두번째.
최근들어선 최장수차관이라며 이젠 후진을 위해 자리를 내줄때가 되었다고 자주 말하곤했다.

<김동휘 상공장관>
경제외교에 탁월한 수완
김동휘상공장관은 매사에 빈틈이 없을정도로 꼼꼼해 온화한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독일병정」이라는 별명이 붙은 외교관출신의 직업관료.
지난54년 22세의 젊은 나이로 고시행정과에 합격, 관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29년간의 관료생활중 26년간을 외교관으로 일해왔다.
76년부터 2년여의 문공부차관과 82년5월부터 지금까지 상공부장관재직을 빼고 모두 외무부에서 근무했다.
영어는 물론 독어·불어·일어에 능통해 상공부장관이 된뒤 각국과의 경제외교에 공이 많았고 수출부진타개와 중화학조정문제등을 무리없이 끌어오는등 탁월한 행정수완을 보여왔다.

<김용한 과기처차관>
예리한 판단력 뛰어나
10일 아침에야 순직이 확인된 김용한과기처차관은 평소 틈나는대로 손에 책을 쥐었던 독서광.
수더분한 인상에 소탈한 성격과는 달리, 경제기획원예산실장재직시 「제로 베이스예산」을 주장하기도 했던 예리한 판단력의 정통파 관료였다.
56년 서울대상대를 나와 65년 미시라큐스대에서 수학했던 김차관은 57년이후 줄곧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해오다 82년l월 예산실장을 끝으로 과기처로 자리를 옮겨 1년9개월동안 차관으로 재직해왔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정순여사와 2남2녀가 있다.

<서상철 동자부장관>
차관 한달안에 장관승진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업무처리에 무리가 없고 대인관계가 부드러우나 공적인 일에는 맺고 끊는데 분명한 엘리트경제이론가.
82년 5월 대학교수에서 건설부차관으로 관계에 들어선후 한달만에 다시 장관으로 승진, 최단시간에 차관에서 장관으로 승진한 기록도 세웠다.
서울대상대 재학중 도미, 미클라크대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한국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클라크대및 고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유가안정시대에 동자부장관을 지내 「폭있는 장관」이라는 소리도 들었으며 무리없는 업무추진과 해박한 경제지식을 두루갖춰 개각설이 있을때마다 영전설이 돌기도했다.

<이계철 버마대사>
일처리 빈틈없는 능력가
군통역장교출신으로 57년에 외무부에 들어와 냉철하고 책임감있게 일을 처리해온 직업외교관.
외교관생활 24년만인 81년 미주국장에서 처음으로 대사발령을 받고 부임한곳이 버마였다.미주국장때는 전두환대통령의 방미에 수행했으며 외교관으로서 지적이고 스마트하며 섬세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평을 듣고있다.
흥분하는 법없이 차근차근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가로 소문나있다. 북미과장·주독공사·주유엔공사등을 거쳤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희익여사(51)와 1남2녀가 있다.

<심상우민정당비서장>
지방언론 육성에 기여
지난 3월 당직개편때 당서열 7번인총재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광주출신의 초선의원. 미몬태나주립대학에서 수학한뒤 호남전기사장으로 일했고 전남매일신문 사장으로 10여년간 지방언론육성에 큰 기여를 했다.
소탈한 성품으로 대인관계가 좋다. 유창한 구변과 퓌어난 재담으로 좌석을 웃음으로 넘치게하는 재질을 갖고있었다.
총재비서실장에 발탁된것도 광주지방의 민심안정에 기여한 노력과 더불어 분위기를 스무드하게 풀어가는 성품이 높이평가받았다는 것. 창에도 일가견을 갖고있고 서양화는 전시회를 여러번 가질만큼 다재다능했었다. 유족은 부인 임옥남여사(45)와 3남2녀.

<하동선 기획단장>
재무서 잔뼈굵은 정통파
재무부에서 관리생활을 시작, 재무부에서 뼈가 굵은 정통과 경제관료.
재무부이재국장·기획원차관보를 거쳐 금년초 해외협력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기획단장(차관급)으로 승진했었다.
항상 웃는 얼굴이면서도 업무처리는 소리안나게 신속·정확하게 해내는 타입이다.
해외협력위원회의 산파역할을 비롯해 아프리카순방등 그동안 대통령의 경제외교마무리작업에 실무책임을 맡아왔었다.
금년초에는 자신의 승진과 함께 고3아들의 전국 수학경시대회 1등으로 경사가 겹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민병석 주치의>
당뇨·신장병등에 권위
29년 충남천안출신으로 52년 서울대의대(6회)를 졸업했다. 미텍사스대의대·필라델피아종합병원·연세대의대를 거쳐 60년부터 가톨릭의대 내과교수로 재직해왔으며 지난해 9월에 강남성모병원장에 취임했고, 대통령주치의는 80년부터 맡아왔다.
누구에게나 존대말을 쓸정도로 자상하고 인자한 성품으로 늘 주위의 존경을 받아온 민박사는 당뇨병을 비롯한 내분비와 신장병의 최고권위자로 손꼽혀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보경여사(46)와 2남1녀가 있다.

<이재관대통령비서관>
해외공보에 큰 활약
한국일보기자와 경향신문 주월특파원을 거쳐 문공부공무원으로 전신했다.
이후해외공보관·홍보조정실을 거쳐 지난6월 청와대공보비서관이 됐다.
책임성 강하고 차분한 성격에 모나지 않은 처신으로 상사·동료들의 아낌을 받아왔다.
지난해 전대통령의 캐나다 방문때 전에 캐나다 공보관을 지낸 인연으로 큰활약을 한것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오게된 인연이 됐다는 얘기다.
이번 순방에 앞서 1개월간 순방 6개국을 사전 답사했고 1주일전 잠시 귀국했다 다시 현지로 떠났었다.
유족으로는 이영수여사(37)와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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