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시청률 40% 훌쩍 넘긴‘장밋빛 인생’ 최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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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진=임현동 JES 기자

병색으로 거뭇거뭇한 눈 밑, 부르튼 입술. 파마 머리의 최진실은 그렇게 병상에 누워 있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깜찍한 미소도, 눈웃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의 '맹순이'는 지금 입원 중인 것이다. "환자 분장이라 그렇지 정말로 심하게 아픈 건 아니에요.눈 밑 다크서클은 그린 거고, 입술은 라텍스를 발랐죠." 그래도 지난달 14일에는 하루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니 실제로도 온전한 몸은 아니다. 촬영에 여념이 없는 최진실을 지난달 말 수원 KBS방송센터에서 만났다.

*** 스스로 선택한 변신

'예쁘게 보이면 안 되고 살도 찌우라'
작가의 주문 사항에 주저없이 아줌마 파마
매일 우유에 계란 노른자 타 마시기도

KBS-2 TV 수목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다. '장밋빛 인생'은 4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4주 연속 주간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장년층을 TV앞에 붙들어 맨 물오른 내면 연기, 어린이 팬까지 가세한 폭발적 인기의 비결이 뭘까.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 속 상황 설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두 아이를 둔 엄마에다 남편의 이혼 요구. 어딘가 낯익은 스토리 아닌가.

"지난해 '장미의 전쟁'을 하고 나서 크게 반성했어요. 화면을 보고 있는데, 나 자신부터 '내가 아직도 옛날 모습에 매달리고 있구나'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장밋빛 인생'팀으로부터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사실 자신의 실제 상황과 비슷한 각본은 연기자들의 기피대상 1호다. 하지만 처음 받아 본 대본의 문장 하나하나가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순간 '그래, 이 작품이야'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절대 예쁘게 보이면 안 되고 살도 찌우라'는 문영남 작가의 주문에 아줌마 파마부터 했다. 매일 계란 노른자를 우유에 타 마시기도 했다. 그런 그를 김종창 PD는 "드라마는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에게도 인생을 공부하게 해준다"고 다독였다.

그래서 최진실은 스스로 변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도, 톱스타의 자부심도 버렸다. 그냥 몰입했다.

"우리도 맹순이처럼 살면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까'하며 울분이 차오를 때가 있잖아요. 누군가를 원망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지만 가장 힘든 쪽은 결국 본인이거든요. 지나고 보면 정말 부질없고,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일까. 어느덧 전 남편 조성민에 대해서도 '덕담'을 던질 여유가 생겨났다. "그 사람도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이제는 좀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야구로 재기했다니 다행이네요. 애들한테도 당당한 아빠로 기억될 수 있잖아요." 물론 아직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다.

*** 비몽사몽 드라마 촬영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아요
쟁쟁한 연기자들과 함께 일하는 게 행복해서죠
연기자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공적인 재기에 대한 대가라기엔 최진실의 일상은 가혹할 정도다. 오전 4시쯤 전날의 녹화를 마치고 수원센터 분장실의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 두 시간 후면 또 하루의 일과가 기다린다. 하품을 하며 분장을 시작하는 시간이 오전 6시. 근처 야식 집에서 배달된 아침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오전 7시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낮 12시 점심시간에 돈가스가 배달됐지만, '또 자'란 별명을 얻었을 만큼 잠이 많은 그는 벌써 꿈나라에 가 있다. 오후엔 햇살이 있는 동안 야외녹화를 하고, 해가 지면 다시 새벽까지 촬영이다. 이런 생활이 벌써 일주일째다. 방송센터가 집인 셈이다.

이유는 하나. 드라마에서 최진실이 빠지는 장면이 거의 없는 것. 하루 녹화 분량을 써 놓은 일과표에는 총 23개 신 중 무려 20개 신에 그가 등장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아요. 쟁쟁한 연기자들과 함께 일하는 게 행복해서죠." 그는 최근 아버지(장용)와 남편(손현주)이 우는 장면을 촬영할 때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더라고 했다. 그날 밤 혼자 분장실로 돌아오는데 절로 웃음이 나오더라고 했다.

"왜나고요? 연기의 참 맛이 느껴지잖아요." 사실 김해숙.나문희.김지영 등 쟁쟁한 중견 스타들이 포진한 출연진은 한국 드라마의 드림팀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연기자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진짜로 쓰러지면 큰일. 그래서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연기자도 아닌 그에게 전담 매니저를 붙였다. 최진실이 모델로 나오는 화장품 메이커 3Lab코리아도 현장에 직원을 파견해 체력관리에 나서고 있다.

인터뷰 도중 중국 50여 방송사에 연예뉴스를 제공하는 엔라이트미디어(光幾傲媒) 한국사무소의 마쉐(馬雪) 대표가 취재하러 왔다. 최진실도 한류(韓流)에 합류했나? 그는 "안재욱을 톱스타로 만든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덕분에 최진실이 아직도 중국 팬들의 기억에 생생하다"고 설명했다.


*** 그래도‘엄마’가 우선

"지금은 드라마 끝나면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놀 생각밖에 없어요
올해는 이제 좀 여유있게 보내도 되겠죠?"

이런 최진실도 결국은 '우선은 엄마, 다음이 연기자'였다. 그는 "세 살배기 딸 수민이가 전화로 '엄마, 촬영 가지 말아요. 집에 와요'하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지금은 드라마가 끝나면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놀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맹순이도 두 아이의 엄마잖아요. 더구나 큰애는 장애도 있고. 그 애들을 버리고 어떻게 죽겠어요. 우리 애들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야 이해가 가고도 남죠."

이러니 죽음을 앞둔 연기에 리얼리티가 넘칠 수밖에. 지난 두 주 동안 집에는 고작 두 번 갔다. 그나마 대본 외우는 걸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딸 수민이는 "탤런트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이모의 질문에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말수가 적은 다섯 살 아들 환희와도 놀아주지 못해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올해 크리스마스는 참 푸근할 것 같아요." 그의 생일은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다. "애들이랑 스키장에라도 가서 호젓하게 보내고 싶어요. 올해는 이제 좀 여유있게 보내도 되겠죠?"

물론이다. 지금 그는 '질투'(1992), '폭풍의 계절'(93), '별은 내 가슴에'(97), '장미와 콩나물'(99) 등 화려한 히트작에 이어 이제 '2기 최진실'의 첫 성공작을 마쳐가는 마당이니까.

송원섭 JES 기자 <five@jesnews.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JES(중앙엔터테인먼트&스포츠)는 중앙일보 미디어네트워크 내 신문.방송.출판.인터넷에 엔터테인먼트 및 스포츠 관련 콘텐트를 공급하는 콘텐트 전문 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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