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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땐 외롭지 않게 소외계층 장례 돕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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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조모(83·여)씨는 지난해 11월 28일 전남 나주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광주 서구 금호1동 자택에서 홀로 지내다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한 지 5개월 만이었다. 조씨는 한 달에 약 46만원씩 지원받아 생활하던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수십 년간 혼자 살았다. 다른 지역 주민이었더라면 무연고자로 장례절차 없이 곧바로 화장됐을 터였다.

 하지만 조씨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이웃들이 함께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센터는 곧바로 장례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윤영복(49) 주민자치위원장이 상주로 나섰다. 이웃 주민들도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으며 음식을 제공하는 등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3일장을 치른 뒤 조씨의 시신은 광주 영락공원에 안치됐다. 조씨의 조카는 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장례를 치르느라) 몸이 힘들고 추웠지만 마음은 이웃들 덕분에 따뜻했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방자치단체가 형편이 어려운 주민의 장례를 치러주는 ‘공영장례제’가 확산되고 있다. 공영장례제는 돌봐줄 가족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나 무연고자·장애인이 사망했을 때 지지체와 이웃들이 나서 장례, 화장, 사망신고 등 절차를 치러주는 제도다. 이혼과 빈곤 등으로 가족 해체가 늘면서 취약계층을 위한 마지막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다.

 이 제도는 전남 신안군이 먼저 시작했다. 2007년 섬 주민들이 육지에서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했다. 섬 특성상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장례 절차를 생략하고 화장해 버리는 주민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광주시 서구는 지난해 1월 신안군 사례를 발전시킨 공영장례제를 전국 최초로 시행했다. 행정기관뿐 아니라 이웃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서구는 지난해 6명의 장례를 지원했다. 중학생 자녀만 남기고 목숨을 끊은 주부, 독거노인 등이 대상이었다. 이후 남구·북구 등도 이 제도를 잇따라 도입했다.

 공영장례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가운데 가족 유무와 재산 상태 등을 살펴 선정한다. 동장·통장이나 주민자치위원장이 위원장, 동네 주민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장례추진위를 꾸려 빈소를 차리고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 서구의 경우 1인 장례비용으로 최대 150만원까지 지원한다. 보건복지부는 서구의 공영장례제를 모범 행정사례로 꼽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임우진 광주시 서구청장은 “공영장례제는 아들·딸이 없어 세상 떠나는 길마저 부양받을 수 없는 소외계층을 이웃 주민과 지자체가 함께 챙기는 것”이라며 “이 제도가 뿌리 내리면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인 공동체 문화가 활성화돼 노인들의 고독사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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