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여당, 우선 국민의 마음을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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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는 과거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모두 포함한다. 올해 두 선거 결과로만 보면 국민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미래까지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당 분열, 자신감 잃었다는 뜻

대다수 국민은 왜 현시점에서 여권에 실망하는가.

먼저 열린우리당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비록 지난해 4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원내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이는 국민이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에 공감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노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국민적 반발의 결과였다. 즉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열린우리당의 지지기반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것이었다.

또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이지만 다양한 세력의 집합체로서 정당의 정체성이 취약했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2003년 말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대선 때 형성된 자신의 지지 세력의 분열로 인해 열린우리당 내에 확고한 중심 세력을 형성할 수 없었다. 정치 경험이 비교적 적은 사람들이 당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면서 정국을 제대로 주도하지도 못하였다. 확고한 당 중심 세력의 부재는 빈번한 당 지도부의 교체로 나타났고, 다양한 세력으로 인해 당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분명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 설정된 주요 정책도 그 실천을 둘러싸고 내분을 반복하고 있다. 즉 열린우리당은 의제 설정도 제대로 못하고 설정된 의제도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국민 실망의 둘째 이유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때문이다. 이는 노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와 국정운영 시스템의 취약에 기인한다.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나 대연정 제안과 같이 국정운영의 기본을 뒤흔들 수 있는 핵심정책을 청와대 참모진이나 당내에서 심도 있고 다양한 검토 없이 본인이 불쑥 제시하곤 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정책 제안과 추진은 청와대.정부.당으로 하여금 대통령의 정책과 제안을 추후에 합리화하는 무리를 반복하게 했다. 이런 무리의 반복은 노 대통령의 당정분리 원칙에 따른 당.정.청의 체계적 협조가 부재한 바람에 더욱 악화되었다.

10.26 재선거 결과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은 노 대통령 취임 뒤 변화된 새로운 한국정치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낮은 국민적 지지도가 의원들의 대통령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 더구나 의원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의 불개입, 대통령에 의해 지원되는 정치자금의 부재와 국가정보원이나 검찰과 같은 국가기관을 이용한 정치인들의 통제 수단을 거부한 노 대통령에게 여당의원들이 두려움을 갖지 않고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사회적 문제 해결부터

그러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어떻게 그들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지난 주말의 당.정.청 지도부 만찬은 당장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대권주자들의 당 복귀도 아니고, 개헌이나 지역구도 극복과 같은 국민 실생활과 동떨어진 정책의 추진도 아니다. 7개월이나 남은 지방선거는 최근 호조된 일부 경제지표와 더불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조급한 처방과 대응보다 국민이 당면한 경제.사회적 문제점들의 점진적 해결을 통한 신뢰 회복이라는 정도(正道)를 요구한다.

이강로 전주대 사회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