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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제대로 읽는 재팬] ‘IS 인질’ 정보 없어 헤맨 아베, 일본판 CIA 밀어붙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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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1일 일요일 새벽 5시30분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총리 관저.

 적막을 깨고 1대의 검은 승용차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와 현관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이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이슬람국가(IS)에 납치된 고토 겐지(後藤健二)가 참수된 영상이 공개됐다는 1보를 비서관에게 연락받고서다. 차에서 내린 스가는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감정에 변화가 없어 ‘부처님’이라 불리는 그다. 처음 보는 스가의 질주에 젊은 수행 비서가 다급하게 뛰어갔지만 이미 스가의 모습은 저멀리 사라진 뒤였다.

 이어 6시10분 관저에 들어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그는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비난성명이 적힌 쪽지를 쥔 아베의 오른손은 시종 부르르 떨렸다.

 일본 정부의 ‘투 톱’이라 불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대로 TV로 중계됐다.

 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창피한 일이지만 두 사람의 허둥거리는 모습은 일본의 정보 능력 부족을 전세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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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IS사태에서 일 정부는 “말 그대로 속수무책”(총리 관저 관계자)이었다. 인질 사태 내내 일 정부는 시종 정보에 목말라했지만 ‘설(說)’ 수준의 첩보조차 제대로 입수가 안 됐다. 심지어 일본인 인질 두 명을 억류한 주체가 IS란 사실을 지난달 20일 동영상이 공개되고 비로소 알 정도였다. 고토가 납치된 뒤 석 달 동안 헛물만 켠 셈이다. 일 정부는 동영상이 공개된 뒤 뒤늦게 경찰청 소속 ‘국제테러 긴급전개반’(TRT-2)을 요르단에 긴급 파견해 정보 입수에 나섰다.

 하지만 인원은 불과 5명. 요르단 정보기관 GID, 그리고 현지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려 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알지도 못하는 일본 ‘경찰’에게 이들 정보기관이 제대로 정보를 줄 리 만무했다. 군은 군끼리, 경찰은 경찰끼리, 정보기관은 정보기관끼리만 정보를 교환한다는 정보세계의 ‘불문율’에 이들은 헛걸음치고 말았다.

 물론 일본 내에도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있다. 대표적인 게 내각정보조사실, 외무성, 방위성(정보본부), 법무성(공안조사청)의 네 곳. 이들 4개 기관이 수집, 분석한 정보는 국가안전보장국(NSC)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NSC는 어디까지나 ‘정책검토’를 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핵심 정보조직은 내각정보조사실과 외무성이라 할 수 있다.

 내각정보조사실은 총리 직속 첩보조직이다. 형식적으론 CIA 등 외국 정보기관의 공식 카운터파트다. 내각정보관 밑에 ▶국내 ▶국제 ▶경제 ▶총무의 4개 부문, 그리고 내각정보집약센터, 내각위성정보센터가 설치돼 있다. 직원 수는 약 170명. 내각정보관은 기본적으로 매주 한 차례, 20~30분가량 총리에게 직보하게 돼 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수시 직보체제’다. 최근 한 달 동안 기타무라 시게오(北村滋) 내각정보관이 아베를 만나 직보한 횟수는 무려 12번이었다. 특이한 점은 내각정보관은 대대로 경찰의 몫이란 점이다. 그래서 외무성 출신이 장악한 NSC조직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한 각료 경험자는 “정보 인텔리전스의 기본은 정보의 수집·분석·전략·발신의 4개가 동시에 일관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일본은 경찰·방위성·외무성 등에서 오는 정보가 하나로 취합이 안 되고 서로 총리나 관방장관에게 직보하며 충성 경쟁하는 변칙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나날이 급증하는 대외 위협에 국내 경찰 정보에 기반을 둔 내각정보조사실이 해외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오가와 가즈히사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지적도 거세다.

 외무성의 경우 본부 내 ‘국제정보총괄관 조직’ 외에 현지 공관에서 정보를 입수한다. 하지만 이번 IS사태 당시 요르단 대사관에는 정보기관원은 물론이고 방위성에서 파견된 ‘방위주재관’조차 없었다. 일본은 현재 주재국 군 관계자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37개국 39곳의 공관에 54명의 ‘방위주재관’을 파견하고 있다. 미국(약 470명), 중국(약 140명), 영국(약 100명)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주요선진 8개국(G8) 중 유일하게 독립 정보기관이 없는 걸까.

 물론 ‘일본판 CIA’ 설립 시도는 수차례 있었다. 첫 시도는 1952년 내각정보조사실을 만든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와 오가타 다케토라(?方竹虎) 부총리에 의해서다. 하지만 요미우리(讀賣) 등 3대 신문이 “전쟁 전 언론통제 및 선전을 담당했던 내각정보국을 부활시키자는 거냐”며 강력히 반발하며 무산됐다. 이후 여러차례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반대 여론이 앞섰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당시에는 이라크에서 발생한 일본인 인질사태 이후 보수성향 초당파 의원들이 “인원 500명, 예산 200억 엔(약 1860억원)규모의 독립 정보기관을 만들자”는 제언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또한 정치권의 혼란으로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이번 IS사태 이후 흐름이 확 바뀌었다. 일과성 사건이 아니란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아베 정권에 의해 집단적 자위권이 용인되면서 ‘자국민 구출’과 정보기관 설립이 교묘하게 하나의 세트처럼 돼 버렸다. 그동안 반대 여론을 이끌던 언론도 일본 사회의 보수화 흐름 속에 아베 편에 가깝다. ‘일본판 CIA’, 즉 JCIA 대망론이 현실로 이어질 공산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5일 참의원에서 “(일본판 CIA 설치에 대해) 정부에서도 논의하고 있으니 국회에서도 이해해 주길 기대한다”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먼저 예산이다. ‘아베노믹스’에 어마어마한 재원이 투입되는 마당에 새롭게 ‘JCIA’를 만들 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설령 500명, 1860억원을 들여 ‘미니 정보기관’을 만든다고 해도 과연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 CIA는 2만~3만 명 규모에 1년 예산만 440억 달러(약 48조원)다. 또한 “기관을 만든다고 당장 정보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길고도 긴 세월이 소요된다”(외교저널리스트 데지마 류이치)는 우려도 있다.

김현기 도쿄특파원 luckyman@jo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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