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젊은 신예 두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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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젊은 신예 두 여성에게 잠시 눈길을 돌려본다. 한 사람은 라트비아의 피아니스트 올가 제구노바(Olga Jegunova), 한 사람은 독일 출신 첼리스트 마리 엘리자벳 헤커(Marie Elisabeth Hecker). 올가가 서른 살 정도로 추정되고 마리 역시 2005년도 로스트로포비치 콩쿨 수상자란 걸로 미루어 비슷한 연배가 아닌가 생각된다.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무명의 이들 이름은 아마 웬만큼 음악을 자주 듣는 이들도 처음 들을 것이다. 나도 유튜브가 아니면 이들을 알 턱이 없다. 무명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두 사람은 근래 내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검증되지 않은 무명 연주가가 남의 주목을 끌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들에게 잠시라도 귀를 기울이는 건 시간낭비라는 선입관이 분명 내게도 있다. 그 점에서 유튜브는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 큰 공헌을 한 셈인데 두 신예는 그런 선입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음악수업을 받았다는 올가 제구노바. 그는 어머니에게서 피아노 수업을 받은 운 좋은 처지지만 오랫동안 그랜드 피아노 갖는 게 소원이었다는 걸로 미루어 부유층은 아니었나 보다. 최근에야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갖게 되어 소원을 이루었다. 올가는 가끔 런던에도 불려가 학교 강당 같은 데서 레슨 연주도 하는데 큰 홀에서 이름있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장면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검색에도 이름은 흔적이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에 딸린 댓글은 글랜 굴드나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보다 월등 많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다.

올가의 첫 느낌은 연주에 세련미가 없고 투박하고 직설적이란 것이다. 검은 투피스에 하얀 깃털을 어깨에 장식으로 달고 나온 모습도 촌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팔과 손동작이 무용수처럼 요란한 연주를 듣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끝날 때까지 꼼짝 못하게 된다. 댓글에는 긍정과 찬사도 있지만 부정적이거나 틀린 곳을 지적하는 글도 많다. 하긴 바이올린의 대가 나탄 밀스타인의 브람스 협주곡을 두고 극단의 상반된 평가를 하는 일본 쪽 평가들을 보면 각자 다른 평가가 이상할 것도 없다.

“쫓기듯 템포가 빠르게 진행된다”, “ 예술성이 안 느껴지고 영혼 없는 음악이다.” 이런 부정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무명 신인이라 야박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모차르트 소타나 K.331의 경우 바렌보임 연주는 처음부터 계산된 진행에 의해 여백의 공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릴리 크라우스의 연주는 갈끔하고 날렵하며 우아한 품격마져 느껴진다. 이런 것을 예술성이라고 한다면 올가에게서 이런 멋과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런데 왜 청중이 몰릴까?

올가 제구노바는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가 상대가 누구건 직설적으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 안 되는 대화를 던져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칼 바르트도 비슷한 언급을 했지만 이런 직설화법이 그 음악에도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올가의 연주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은 모차르트 음악의 이런 꾸밈없는 속성을 그가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대가 있어 이 지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느 댓글인데 나도 여기에 이의가 없다.

독일 처녀 마리 엘리자벳 해커가 내 눈길을 처음 끈 것은 큰 악기에 비해 지나치게 연약해 보이는 가느다란 체구 때문이었다. 마리가 체코 어느 지방의 무슨 상공회의소 오케스트라와 하이든 ‘첼로협주곡을 연주하려고 무대에 나섰을 때 힘이 많이 필요한 이 곡을 그녀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그가 힘을 안배해서 모든 고비를 무난하게 넘기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너무 귀에 익어서 지금은 별로 감흥조차 못 느끼는 곡을 마리의 연주로 내가 십분 즐겼다는 걸 깨달았다. 마리는 보기와 달리 테크닉이 뛰어나고 섬세한 감성적 접근으로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부정적 평가들은 주로 자크린느 뒤 프레와 로스트로포비치에 견주는 내용인데 내가 보기에는 적절치 않거나 틀린 것들이다. 자크린느 연주는 기교는 물론 깊은 감성의 표현에서 하이든 첼로 협주곡의 최고점에 서 있는데 반해 로스트로포비치는 스케일에 비해 치밀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두 거물과의 비교평가는 이제 갓 얼굴을 내민 마리에게 부당한 것이다.

연약하고 조용해 보이는 이 젊은 여성 연주자에게도 불같이 뜨거운 열정을 과시하는 순간이 있다. 쇼스타코비치 첼로협주곡 1번 첫 악장을 연주하는 장면을 보면 하이든을 연주하던 침착하고 단정한 모습은 간 데 없고 불길 속에서 사투하는 여성 전사처럼 맹렬한 기세로 활을 휘두른다.

이 첫 악장이 나치군을 향해 진격하는 러시아 민간 수비대의 용맹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긴 하나 그렇더라도 다른 연주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전력투구의 모습이다. 미친 듯 질주한 뒤 연주가 끝났을 때 그는 조용히 눈을 뜨고 - 그는 시종 눈을 감고 연주하는 버릇이 있다 - 청중을 향해 살며시 미소짓는 얼굴에서 신예만이 보여주는 풋풋한 향기를 느낀다.

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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