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갑’의 비명 … 법인세 2조 늘 때 소득세 11조 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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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은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증세 문제와 관련해 “국민적 컨센서스가 전제되고 국회가 정하면 정부는 따르겠다”고 말했다. 임환수 국세청장(오른쪽)은 연말정산의 카드사 오류에 대해 “근로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봉급생활자만 봉이냐.”

 연말정산 파문 이후 봉급생활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기업의 법인세는 깎아주면서 봉급생활자의 소득세는 계속 올려왔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증세 논란에서도 법인세와 소득세의 형평성이 도마에 올랐다. 5일 국회에서 진행된 국세청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 통계로도 입증됐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소득세 수입은 2013년에 비해 6조8698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는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첫해다. 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 때 전체 근로자의 16% 정도인 연소득 5500만원 이상 247만 명의 세금만 늘어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로 인한 세수 증가분도 1조원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득세가 7조원 가까이 더 늘어나 세액공제 영향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법을 전혀 건드리지 않아도 실업률이 갑자기 치솟지 않는 한 소득세수는 해마다 2조~3조원 늘어난다. 물가 상승에 따라 명목임금도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세수가 7조원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 건 정부 예상보다 증세 효과가 훨씬 컸음을 보여준다. 물론 소득세는 근로소득세뿐 아니라 종합·양도·사업·배당·이자·퇴직·연금 소득세도 포함된다. 전체 소득세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다. 그런데 경기 침체로 종합·양도·사업·배당·이자·퇴직·연금 소득세는 제자리걸음을 했거나 오히려 줄었다. 이를 감안하면 봉급생활자의 ‘유리알 지갑’이 세수 증가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소득세는 올해도 4조2779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물론 정치권과 정부가 연말재정산을 통해 더 거둔 세금의 일부를 근로자들에게 돌려주기로 했지만 세수 증가분과 비교해선 크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소득세 수입은 2012년에도 큰 폭 늘었다. 당시 소득세 최고세율이 35%에서 38%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법인세수는 지난해와 올해 46조원대로 변화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로 인해 최근 2년 동안 법인세와 소득세 수입 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소득세는 지난해부터 2년 동안 11조1477억원이 더 걷힐 전망이다. 반면 같은 기간 법인세수는 2조1918억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최근 2년간 세수 증가 규모에서 소득세가 법인세의 5배를 뛰어넘는 셈이다. 최근 법인세율 인상론이 불거진 이유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25%에서 22%로 인하됐다. 정부는 세계적 법인세 인하 추세를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기업은 경기가 안 좋아서 법인세가 적게 걷힌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봉급생활자 입장에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세 부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개별소비세가 신설됐다. 세액은 갑당 594원이다. 이에 힘입어 올해 개별소비세는 지난해보다 1조7152억원 급증한다. 담뱃값에 붙인 개별소비세 신설 효과가 올해부터 즉각 반영된 결과다. 이렇게 되면서 개인은 지난해부터 국세 수입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고 있다. 소득세 세수는 2010년 법인세수를 이미 추월한 데 이어 올해는 사상 처음 부가가치세수까지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도입 이후 39년간 단일세율 10%를 유지해 온 부가가치세는 국세에서 부동의 ‘원톱’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소득세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2012년부터 세입결손이 3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그나마 소득세가 떠받치고 있어 재정 운영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질서 있는 세제 개편과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복지를 구조조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세목별 세율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증세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세입예산은 210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세수실적보다 14조4000억원(7.4%) 증가할 전망이다.

글=김동호 선임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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