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훈 박사의 건강 비타민] 위암으로 발전하는 위염 … 50%는 완행, 39%는 급행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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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노성훈 박사
연세암병원장

연말에 이어진 회식 탓일까. 속이 쓰릴 때마다 위장약을 먹던 최모(53·울산광역시)씨는 며칠 전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그는 2013년 건강검진 때 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 진단을 받았다. 낯선 이름의 이 병에 걸리면 위 염증이 발생-회복을 반복하면서 점막 세포가 소장·대장 세포처럼 변하고 원상회복이 안 된다. 게다가 세포가 변해 돌연변이가 나타나거나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이번 검사에서 장상피화생이 악화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혹시 위암으로 번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장상피화생의 원인은 위염이다.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가 2012년 위내시경 검진을 받은 2만5536명을 분석했더니 85.9%가 한 종류 이상의 위염을 앓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최근 1년간 속 쓰림·윗배 통증·불쾌감·소화불량 등을 경험한 사람은 51.6%였다. 위염 환자의 상당수가 자각 증상이 없다는 뜻이다. 위염이 이렇게 흔한 병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위암 발생 경로는 세 가지다. 만성위염→위축성 위염(점막 세포가 위축돼 위 점막이 얇아진 상태)→장상피화생→이형성증(종양과 구분이 모호한 점막의 이상 변형)→위암(장형)으로 간다. 이게 전체의 50%다. 위염에서 바로 위암(미만형)으로 가는 게 39%고, 둘의 혼합형이 10.9%다. 장형 위암은 암세포가 뭉쳐 있고 미만형은 흩어져 있다. 장형(腸形)이 일반적인 암이고, 미만형(彌滿形)은 젊은 여성에게 많다.

 위염은 때로는 장형 위암으로 가는 ‘완행열차’이기도 하고 미만형 위암으로 가는 ‘급행열차’이기도 하다. 속도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이모(74·서울 마포구)씨는 5년7개월 전 장상피화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치료는 안 해도 되지만 정기적으로 위내시경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 전 속이 불편해 검사를 받았더니 위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장상피화생이 모두 위암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장상피화생 환자는 전체 인구의 7~37%다. 터키(48.1%)·일본(44%)·이집트(24.4%)·태국(6%)의 환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IARC)에 따르면 한국의 위암 발생률은 18.7%로 일본(18%)과 비슷하다. 터키(6.9%)·태국(2.6%)·이집트(1.8%)는 그리 높지 않다. 장상피화생과 위암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종합하면 장상피화생은 당장 치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정기적으로 반드시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세브란스 건강검진센터(체크업)의 내시경 검사에서 위암 진단을 받은 사람 75명을 분석해보니 모두 위염이 있었다. 위축성 위염 27명(33%), 장상피화생은 11명(14.7%)이었다.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모두 위암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위암으로 악화된다는 얘기다. 이형성증은 다르다. 위축성 위염이 위암이 될 확률을 1이라고 하면 장상피화생은 1.7배, 일반적 이형성증은 3.9배, 중증 이형성증은 40배에 달한다. 이형성증은 발견 즉시 제거해야 한다.

 만성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있다면 타거나 짠 음식, 술·담배를 피해야 한다. 비만·당뇨병도 위암 발병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식사 조절과 운동으로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노성훈 연세암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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