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 '이것이 논술이다'] 100자서 2500자까지 다양한 글쓰기 훈련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오케이로직논술 대표

2005학년도 대학입시 논술고사에서 답안을 작성하고 있는 수험생. [중앙포토]

8월 말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논술의 본질은 바뀐 것이 전혀 없다. 그 많은 말들은 호들갑에 불과한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논술은 철학이다. 오늘과 같은 유형의 논술이 도입된 1998학년도부터 이 원칙이 바뀐 적은 없었다. 논술이 입시이기 때문에 훈수꾼이 많은 것일 뿐이다.

논술은 생각하는 힘을 묻고 생각을 표현하게 하는 시험이다. 이 과정에서 생각거리인 주제와 자료가 제시된다. 이번에 조금 바뀐 것이 있다면, 자료가 영어면 안 된다는 것과 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묻지 말라는 것 정도다. 문과 학생에게 주제와 자료를 해석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같다. 결국 논술 실전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해석.판단.응용 등 생각하는 힘과 100자에서 2500자에 이르는 다양한 분량으로 글을 쓰는 능력이다.

논술을 준비하려면 먼저 실제로 출제된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학원에서 다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요즘 부모들은 대부분 교육을 많이 받았으니 직접 문제를 살펴라. 학원가를 봐도 대학에서 문제 해설을 주지 않으면 가르치지 못하는 강사가 태반이다. 유명 출판사에서 나온 논술 참고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논술 준비를 위해서는 먼저 '배경지식'은 버릴수록 좋다. 배경지식은 사기다. 얄팍한 '배경지식'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주어진 자료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출제 의도를 벗어나 논점 일탈을 범하는 학생이 많다. 지름길의 유혹에 속지 말고 정도(正道)를 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다독(多讀)이 대안인 것만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강요되는 다독은 남독(濫讀)이 되기 쉽다. 일부 학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권씩 '고전'을 읽고 토론을 시키는데, 사실 그런 유의 고전을 일주일에 읽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해 토론까지 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 대학에서도 이처럼 무책임하게 책을 읽히지는 않는다.

교수가 원하는 것은 학생이 그런 '고전'을 읽고 해석할 기본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시대가 느림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있지만, 정작 논술 훈련에서부터 느린 독서를 해야 한다. 정독(精讀)이 답인 것이다.

결국 다양한 자료, 특히 언어로 된 제시문을 파악할 줄 알면 충분하다. 이것도 쉽진 않지만, 요란하게 준비할 사항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계별로 점검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지만, 어차피 학생은 글로써 승부해야 하므로, 직접 쓴 글을 첨삭 지도받는 것이 가장 좋다. 교사나 전문가가 도와줄 대목이다. 특히 같은 내용이라도 다양한 분량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학교마다 시기마다 다양한 분량의 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논술에서 편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느리더라도 꾸준한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 승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판가름난다. 선인들의 조언대로,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 논술을 잘하는 유일한 길이다.

◆김재인씨는=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한국예술종합학교.가천의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문학과지성사.문지스펙트럼.문지푸른책 편집위원, 오케이로직논술 대표, 유웨이중앙교육 논술대표강사로 있다. '네 정신에 새로운 창을 열어라''21세기 키워드100' 등을 공저했고 '베르그송주의'(들뢰즈 저)'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커니)'크산티페의 대화''프뤼네의 향연'(스크루턴)'천 개의 고원'(들뢰즈 & 가타리)'들뢰즈 커넥션'(라이크만) 등 현대 철학서 다수를 번역했다. 대치동 최초로 일대일 대면첨삭 논술 시스템을 개발.정착 정착시켜, 입시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7년째 철학 전문 홈페이지 '철학과 문화론'(http://armdown.net)을 운영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