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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 사용설명서] 그때 한옥은 위로였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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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입니다. 정확히는 4일 낮 12시58분입니다. 이 시간에 맞춰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쓴 입춘축(立春祝), 혹은 춘방(春榜)을 붙이면 길운이 온다고도 합니다. 대개 가로 15cm, 세로 70cm 정도의 한지 두 장에 써서 붙입니다.

 예전엔 ‘입춘대길’을 붙인 집이 많았는데 요즘엔 찾아보기가 힘들죠.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 절기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습니다. 큰 추위는 끝나고, 눈이 녹아 비가 되는 시절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 되겠네요. 하지만 실제 입춘 당일은 평소보다 추워지곤 했던 것 같습니다. ‘입춘인데 왜 이리 춥지?’하며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진짜 봄을 맞으려면 추운 겨울을 떠나보내야 하는 힘든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 거겠죠.

 이번 주 강남통신에서는 입춘을 맞은 한옥 풍경을 담았습니다. 겨우내 묵은 때를 벗겨내고 봄 맞이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한옥에서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한옥에서 살아본 적 없는 젊은이들 중에도 한옥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아파트 생활이 답답한 중장년층들은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한옥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주거공간이지만 아파트와 한옥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평형에 따라 구조가 결정되는 아파트와 달리 한옥은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그 구조가 모두 다릅니다. 집 주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더 중요한 건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한 서촌 토박이 주민은 “한옥살이란 버리는 삶”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삶의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에 자연을 들이는 게 한옥에서의 삶이라고 합니다. 주민들 중엔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버린 이도 있었고, 아파트에서 쓰던 대형 가전제품을 포기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대신 그 공간에 바람과 햇볕과 하늘을 담아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여유와 멋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제게도 한옥은 언젠가 꼭 살아보리라 생각하는 하나의 로망입니다. 몇 해 전 취재를 위해 한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당을 바라보며 대청마루에 앉아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이 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한지로 된 창문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볕은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건축사학자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는 저서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에서 “사람들이 한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한국인의 본성에 가장 잘 맞는 집이기 때문”이라며 “최근의 한옥 열풍은 지금 한국 사회의 삶이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에 이런 지혜와 행복을 그리워하면서 나타난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한옥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는 “한옥은 그림과 문자, 자연과 예술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공예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강남통신 김소엽 기자에게 자신의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예쁘죠? 얼마나 예쁜지 좀 보세요”라고 연신 자랑을 했답니다. 낡았다는 이유로 한옥을 철거해버리는 건 한국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역사’에선 한국의 커피 1세대로 불리는 강릉 ‘보헤미안’ 주인 박이추씨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최상급 커피란 뭐냐고 물었습니다. “인스턴트 커피든 스페셜티 커피든 커피를 주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이 공감하고 즐거우면 그게 최상급 커피”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집도, 커피도 최상급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박혜민 메트로G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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