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 등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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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벽3시쯤 적막에 잠든 화엄사를 왼쪽으로 끼고 등산로로 접어든다. 주위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만 손전등으로 길을 밝히며 올라가면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가 없어 좋다. 오른쪽으로 시원한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제1야영장을 지나 40여분간 완만한 경사의 산길을 걷다보면 제법 널찍한 제2야영장이 나온다. 곳곳에 야영하는 텐트들이 눈에 띈다. 야영객들이 잠을 깰까봐 발소리를 죽이며 산길을 오르면 새벽4시를 알리는 화엄사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우거진 나무숲이 하늘을 가린곳이 많아 흡사 터널속을 지나는 느낌이들 때도 있다. 새벽5시쯤 잠을깬 산새소리와 함께 하늘이 희부옇게 밝아올 때면 해발7백m쯤에 위치한 중재.
하늘이 차츰차츰 밝아지면서 주위의 산세가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40분쯤 가파른 길을올라가면 집선대 샘터. 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 목을 추긴다.
새벽등산의 상쾌한 기분이 절로 난다. 그것도 잠시뿐, 더욱 경사가 심해진 길을 오르다 보면 배낭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잠시 식었던 땀이 다시 온몸을 적신다. 1시간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야 능선에 도착할 수 있다. 화엄사에서 약8.5㎞.
「노고단산장 l.1㎞」라고 씌어진 표지판이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리게 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지금까지 올라온 화엄사계곡이 한눈에 펼쳐진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듯한 이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다.
노고단산장까지의 능선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잘 닦여져 있다. 아침 7시쯤 산장에 도착,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해발 1천5백여m의 고지대이기 때문에 밥이 설고 찌개가 잘 안익는다. 1시간쯤 쉰뒤 수통에 물을 채우고 4㎞쯤 떨어진 임걸령을 향해 능선길을 따라갔다. 북쪽계곡에서 몰려드는 구름의 바다가 지리산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관목숲 사이로 철쭉꽃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샛노란 나리꽃이 눈길을 끈다. 좌우로 펼쳐진 계곡들은 글자 그대로 나무숲의 바다. 손에 잡힐듯 앞에 보이는 반야봉은 구름옷을 입고있다.
임걸령 조금 못미처 삼거리에서 능선을 왼쪽으로 버리고 오른쪽 피아골 계곡으로 접어든다. 연곡사까진 13㎞. 경사가 급하고 축축히 젖은 하산길은 무척이나 미끄럽다. 질나쁜 등산화나 홑양말을 신은 사람들이 고생이 심한건 이때부터.
발걸음을 조심하면서 1시간30분쯤 내려오면 피아골 삼거리. 경사가 점점 완만해지면서 걸음이 조금 편해진다.
다시 1시간30쯤 내려오면 다리가 나온다. 이때쯤이면 발이 무척 아파온다. 다리 조금 못미처 계곡에서 양말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면 뱃속까지 시원해진다.
다리에서 부터는 거의 평탄한 길. 40분쯤 걸으면 가게들이 나온다. 이때가 하오1시. 서둘러 점심을 먹는다.
화엄사→노고단→임걸령→연곡사 코스는 약31㎞. 시간으론 10시간쯤 걸린다. 코스가 길고 경사가 심한 길이 많아 초보자들에겐 약간 무리. 서울에서 토요일 저녁8시쯤 떠나 버스에서 자고 새벽3시부터 산행을 시작하면 일요일 밤9시30분쯤엔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반드시 길을 잘아는 리더와 함께 떠나야 새벽등반때 당황하지 않게 된다. 정진동 <국제종합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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