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aturday] 국경 없는 우리은행 안산 원곡동 센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28일 우리은행 원곡동외환송금센터 김장원 센터장, 송계지 대리, 오림정계장, 멜다 대리(왼쪽부터)가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우리은행]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께몬아첸, 돈노바드! 아유보완, 모허머 이스투디! 니하오 환잉꽝린, 쎄쎄 칭 만저우! 즈드라스뜨부이쩨, 스빠시바….”

 평일과 일요일 오전 10시 정각. 경기도 안산 다문화거리 중심부에 위치한 우리은행 원곡동외환송금센터에선 9개 국어로 개점 인사가 울려 퍼진다. 여느 지점처럼 나란히 선 직원이 한국어로 시작한 인사말을 영어·중국어·방글라데시어·캄보디아어·러시아어 등 8개 외국어로 되풀이한다. 2년 넘게 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김장원(43) 센터장은 지난 28일 기자를 만나 “이용 고객의 99%가 외국인이다 보니 국경 없이 고향에 온 느낌을 주려 노력한다”고 했다. 은행 안에는 손바닥만 한 상품 책자부터 환율 고시까지 모든 안내문이 4~5개 국어로 적혀 있다. 동남아시아 국제공항 같다.

 2012년 9월 센터가 생기기 전 이곳은 ‘금융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몇 안 되는 입출금기(ATM)마다 고객이 10~20m씩 줄을 섰다. 은행 영업 시간에도 외국인은 창구 대신 기계를 찾았다. 김 센터장은 “우리(한국인)도 낯선 외국에선 수수료에 관계없이 일단 필요한 현금을 무사히 뽑고 싶은 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사소한 것 하나도 외국인 입장에서 본다. 전국에 딱 10대, 공항과 출입국관리소에만 있는 달러 ATM을 들였다. 평일 은행 방문이 어려운 고객을 배려해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하루는 이태원에 나가 ‘거금’ 10만원을 주고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을 샀다. “이걸 입고 있으면 고객이 정말 좋아합니다. 다들 모국어로 말을 걸어요.”

 센터 한쪽에는 진짜 동남아 출신 직원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멜다 야니 이브라힘(39) 대리다. 12년 전 비전문취업비자(E9)로 ‘돈 벌러’ 한국에 왔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아이를 낳고 쉬는데 은행에서 일해보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영업은 처음이라 마음이 답답했어요. 페이스북 친구(한국 거주 외국인)에게 ‘송금 어려우면 멜다 언니한테 부탁해’라고 알리면서 출장 영업이 시작됐죠.” 식당에서 일하는 고객 대신 설거지를 해주고, 성폭행 당했다는 동포에겐 상담센터를 연결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효과를 봤다. 올 초 다녀온 대구 출장 때는 이틀간 외국인 500여 명이 몰렸다. “한 사람이 계좌 2개씩만 터도 1000계좌. 대단하죠?”

 중국 동포인 송계지(34) 대리와 오림정(28) 계장도 인기 만점이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소재 의류회사에 다녔던 송 대리는 카카오톡 친구 목록이 3400여 명이다. 이날 송 대리에게 송금 상담을 받은 중국인 A씨는 “한국에서 뭐가 불편한지, 중국 은행에서 어떻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송 대리는 “거래하던 고객이 강원도로 이사 갔는데 그쪽 지점에서 불편을 겪고 ‘원곡동 송 대리에게 물어보라’고 요청해 다른 지점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 국제통상학을 전공하고 명지대 교환학생을 거친 오 계장은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에도 능통하다. 입사 후 한국 은행원도 취득하기 어렵다는 외환전문역 자격증을 땄다.

 친절·친근·밀착을 모토로 한 다문화 전략에 힘입어 센터는 2년 만에 폭풍 성장했다. 2012년 1000여 명이던 고객 수가 지난해 말 2만여 명으로 20배 늘었다. 수신액도 10억원에서 150여억원으로 15배가 됐다. 직원 4명으로 시작한 출장소는 8명이 일하는 어엿한 지점이 됐다. 지난 24일 이광구 행장은 경영전략회의에서 김 센터장과 외국인 여직원 3명에게 특별 포상을 내리고 지점 승격을 발표했다. 차장이던 김 센터장은 단번에 지점장이 됐다. 직원 3명은 ‘무기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2년마다 계약을 새로 할 필요가 없고 육아휴직 등 복지 혜택을 받는다.

 80%를 웃도는 안산시 원곡동의 외국인 거주 비율은 전국 1위다. 이곳의 ‘다문화 마케팅’은 이제 전국의 은행이 배울 사례가 됐다. 주요 시중은행 6곳의 외국인 고객 수는 지난해 11월 437만 명으로 2010년부터 매년 약 10%씩 늘고 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