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 들고 나온 후세인 "나는 이라크 대통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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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공식 재판에서 사담 후세인이 손짓을 해 가며 말하고 있다. [바그다드 로이터=연합뉴스]

사담 후세인(68) 이라크 전 대통령에 대한 공식 재판이 19일 처음 열렸다. 후세인은 이날 낮 12시(현지시간)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통령 등 다른 피고인 7명과 함께 바그다드 시내 특별법정에 섰다. 그러나 후세인 전 대통령의 비협조로 재판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재판은 3시간여 만에 끝났으며, 다음달 28일 다시 열린다. 그러나 특별법정의 정통성과 재판 절차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국제사회에서 일고 있다.

◆ "나는 이라크 대통령"=검은 회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수염을 길게 기른 후세인은 교도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법정에 나왔다. 손에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들고 있었다. 철창으로 만들어진 피고석의 가장 앞쪽에 전 이라크 혁명재판소장 아와드 알반다르와 나란히 앉았다. 그러고는 차분한 모습으로 판사와 신경전을 벌였다. 판사 5명 가운데 주심은 쿠르드족 출신인 리즈카르 아민 판사가 맡았다. 후세인은 성명 등 인적사항을 묻는 아민 판사에게 "나는 이라크 대통령이다. 헌법상의 권리에 따라 소위 '법정'이라고 불리는 거짓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나의 인적사항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판사 5명에게 "당신들은 나를 알 텐데.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냐"라며 비웃었다. 아민 판사가 '전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후세인은 눈을 부라리며 아직도 합법적인 대통령이라는 표정과 몸짓을 보이기도 했다. 후세인의 이런 행동에 자극 받은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통령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다른 6명의 피고인은 대부분 판사의 질문에 순순히 답했다.

◆ "나는 무죄"=후세인은 재판 내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검사가 장시간에 걸쳐 혐의 사실을 읽자 이마에 깊은 주름살이 생길 정도로 검사를 노려봤다. 재판이 끝나갈 무렵 반인륜적 학살, 고문, 강제추방 등의 혐의 사실을 읽은 아민 판사가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후세인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코란을 들고는 준엄한 목소리로 "무죄"라고 말했다. 다른 7명의 피고인도 무죄라고 주장했다. 후세인은 법정을 나갈 때 2명의 교도관이 팔을 잡으려 하자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그러고는 홀로 법정을 나갔다. 이날 아민 주심판사는 변호인단이 요청한 3개월 연기요청을 거부하고, "11월 28일 다시 재판을 연다"고 선언했다.

◆ 특별법정 공정성 논란=검찰이 1982년 7월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60㎞ 떨어진 시아파 거주지 두자일 마을에서 벌어진 주민 140여 명 학살 사건만으로 후세인을 기소한 것은 재판을 빨리 진행하기 위해서다. 이란과의 전쟁이나 쿠르드족 학살과 같은 대형 사건을 다룰 경우 재판이 길어진다. '두자일 사건'만으로도 후세인은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영국의 국제사면기구(AI)는 18일 "전범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국제관례상 전범재판의 경우 종신형이 최고형이다. 또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 인권 민간기구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8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특별법정은 후세인 재판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별법정이 이라크 정부의 공식기구나 국제 사법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별법정은 2003년 12월 전쟁 당사자인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임시행정처(CPA)에 의해 설립됐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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