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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 15. 개화기의 列强 인식 <4> 러시아-박노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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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개화기 조선 지식인들의 눈에 비친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마지막으로 러시아편입니다. 러시아 출신의 귀화 한국인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환상을 지적합니다.

하나는 제정 러시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에트 소련에 대한 것입니다. 둘 다 내부적 약점과 실상을 보지 못한 채 무조건적 긍정과 부정이란 피상적 판단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허동현 교수는 지난 1백년간 한반도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주도권 쟁탈이란 측면에서 재조명합니다.

스스로의 힘을 키우진 않고, 정치적 입지에 따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각기 끌어들이려고만 하는 가운데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했다는 것입니다.

구한말의 지배층은 러시아를 '강한 국가'로 보았습니다. '인아(引俄)'정책, 곧 러시아를 끌어들여 이용하려 했던 고종의 측근 이용익과 같은 친러시아적 인물들은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러시아가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1897년 3월부터 고종을 압박하며 노골적인 간섭정책을 펴기 시작했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친미적 개혁가 서재필.윤치호도 러시아의 '강성함'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독립신문을 보면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열강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 행동을 할 수 있는 강대국이다"(영문판, 1897년 11월 23일)라는 주장이 나오며 러시아 군대의 전투력에 대한 찬사가 연발되기도 합니다.

통찰력이 뛰어난 윤치호 역시 1896년 러시아를 방문해 "그 나라의 공장에 설치된 좋은 기계들이 거의 다 서구나 미국제"라는 사실, 즉 러시아가 서방 선진국에 비해 기술발전이 훨씬 느리다는 사실을 눈치챘음에도 러시아의 군사력을 계속 높이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참패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예상밖의 청천벽력이었을 뿐 아니라 일본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불가피하게 여기거나, 나아가 '백인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일본의 지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러시아의 실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전근대적인 지주층의 대토지 소유에 대한 농민의 분노가 커지고, 근대적 식자층과 무산계층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제정 정권의 기반이 파괴되고 있던 상황을 보지 못한 채 '강국 러시아'에 대한 환상에 잠겨 있다가 1904년 그 환상이 산산조각난 뒤 관심을 거두고 만 것입니다.

1917년 볼셰비키들이 집권한 뒤 러시아는 다시 의미 있는 국가로 부상하게 됩니다.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에게 '러시아'는 '혁명'의 동일어가 되었고, 이미 1920년대 초반부터 '적로(赤露)'에 대한 입장의 문제가 조선의 지성인들을 양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인 혁명가 김산(본명 張志樂)은 소련을 '세계 모든 혁명가들의 어머니'로, 상당수 사회주의 지향적인 지식인들은 '신문명 건설의 현장'(모스크바 주재 특파원 이관용의 기사, 동아일보 1925년 5월 23일)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여론을 기본 준거틀로 삼았던 안창호와 같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은 제정 러시아의 외채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 소련을 '도둑놈의 정부'로 보았습니다. 또 완강한 민족주의자 김구는 국제 공산당 (코민테른)의 지휘와 명령을 조선에 대한 또 하나의 속박으로 이해했습니다.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대한 노선 차이로 민족운동이 분열된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좌파와 우파 모두 소련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은 채 융통성과 깊이가 결여된 무조건적 긍정과 부정만을 내세운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공산주의를 '야만'과 '위협'으로만 인식한 우파의 반소련적 분위기는 결국 남한 '주류'사회의 반공 이데올로기로 계승되었습니다.

반면, 제정 러시아의 실정에 대한 무지가 그 '강대함'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을 키우듯, 스탈린 시대 소련에 대한 구체적 정보의 부족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스탈린식 '병영 사회주의'의 내부적 모순들을 노정한 동유럽권의 몰락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받은 충격은 1904년 제정 러시아가 참패했을 때 조선의 지식인들이 받은 충격과 비슷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꿈과 환멸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한 나라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외형적인 강약이나 군사력보다 먼저 그 사회의 내부적 갈등과 모순부터 바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00년대의 제정 러시아나 1980년의 소련은 외형적으로는 매우 강해 보였지만 허무하게 몰락함으로써 내부적 부실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의 '강대함'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남습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사진 설명 전문>
1904년에 일본에서 나온 필자 불명의 지도로 서양 만화에 자주 나오는 국제세력 관계 지도를 익살맞게 번안했다. 러시아를 문어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문어 다리로 묘사한 데서 당시 일본의 러시아에 대한 공포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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