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벼룩시장」성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의 노점상들이 당국의 단속을 받고있다. 파리의 벼룩시장은 노점상들이 어깨를 펴는 곳이다.
벼룩시장의 상인들은 당국이 지정한 일정지역에 크게는 10여평, 작게는3∼4평 규모의 점포를 갖고있고 경찰에 고물상등록을 하게돼있다. 경찰은 물론 이들이 사고파는 모든 물품의 장물여부를 체크한다.
파리의 경우는 1920년 「로펭·베르네종」이란 토지소유자가 자신이 갖고있던 센강북쪽 빈터에 간이점포를 지어 이들 고물상에게 임대 또는 분양했던게 오늘날 벼룩시장의 효시가 됐다.
이후 주로 변두리 여러곳에 같은 종류의 시장이 생겨 현재 파리 벼룩시장의 총면적은 30㏊(30만평방m), 점포 1천5백개 간이진열대 1천4백개로 집계되며 모두 영업허가를 갖고있다. 유명한 곳으로는 클리냥쿠르·알리그르·몽뢰이등 6곳. 파리의 벼룩시장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토·일요일의 주말에 문을 연다.
비교적 번듯한 점포들에는 옛귀족들의 성에서 흘러나온 값비싼 골동 공예품이나 가구· 그림에서 금은세공품까지 진열돼있다. 심지어 어느 대가집 거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듯 벽난로·침대·굴뚝·층계등이 제모습 그대로 놓여진 곳도 있고 정원용 대리석 조각만을 취급하는 상인도 있다.
이런「귀족」점포들 주변에는 서민들이 쓰던 온갖 잡동사니들만 늘어놓은 소규모 점포들이 자리를 잡고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수십년전의 여자속옷, 뒤축이 떨어져나간 헌구두, 해진 양말, 깨진 술병,이빠진 코피세트, 녹슨 주방기구, 한쪽다리가 부러진 의자, 찢어진 모자, 골조만 남아있는 헌침대, 손잡이가 떨어져나간 가죽가방, 고물카메라, 축음기, 자봉틀, 고서, 엽서, 단추, 옛날골무, 해적들이 쓰던 단총과 단검, 가발, 의치…, 세상에 나왔던 모든 물건들이 여기에 있다.
대소 점포가 늘어선 벼룩시장 길가에는 허가점포를 마련하지 못한 영세노점상인들이 목판이나 신문지 위에 또다른 전을벌인다. 이들이 늘어놓고있는 상품들은 손끝만 닿아도 먼지가 풀썩풀썩 이는 넝마나 다름없는 허드렛물건들.
자신이 쓰던 모자나 입고있던 옷가지, 신고있던구두, 달고다니던 열쇠고리, 몇년을 아끼던 T셔츠, 손칼, 손톱깎이, 침대보, 등산용 배낭, 한족뿐인 스키, 군복무때 쓰던철모, 군화등을 길바닥에 늘어놓고 있다. 고객들은 서민들이 대부분이지만 골동품에 취미를 가진 중산층들도 적지않다.
시장지역안의 이런 노점상들은 영엽허가가 없는 말그대로의 거리의 상인으로 벼룩시장에 고객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뜨내기로 곁다리 붙어와 앉아있는 것이다.
사실상 이들은 「불법영업」으로 단속대상이 되지만 시장의 분위기를 보다 부드럽게하고 관광객들의 관심도 끌겸해서 당국이 묵인하고 있을뿐이다.
이들은 시장지역의 청소비조로 시당국에 하루1평방m에 2프랑(약2백20원)씩의 자릿세를 내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대한 특별한 권리가 주어지는건 아니다.
벼룩시장이 아니더라도 지역에 따라 일정시간에 개장되는 물물교환시장에도 떠돌이노점상이 몰린다. 날짜와 시간·장소가 엄격히 지정돼 그 범위안에서만 영업이 가능하고 개장시간이 끝나면 모두 사라졌다가 다음시장이 설때 다시 보따리를 챙겨 나타난다. 파리근교의 샤투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고철물물교환시장이 유명하고 노점상도 이곳에 가강많이 몰려온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도로를 무단점유하는 노점상이 부쩍 늘어나 이들과 경찰의 숨바꼭질이 없지않지만 벼룩시장안의 노점상을 방치하는 것이나 물물교환시장처럼 정기적인 그리고 일정지역을 지정해 노점영업을 허가하는 것은 결국은 무질서한 거리가 되지않도록 영세 노점상들에게 살수있는 숨통을 틔어주는데 그뜻이 있다고 할수있다.
서울의 경우도 대책없는 무차별단속으로 이들의 생계를 위협할게 아니라 일정지역을 일정시간노점상에게 정기적으로 개방해 이들을 한곳에 모은다든가 해야할 것같다.

<파리=주원상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