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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동물보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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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보통 사람에게 동물은 두 가지 의미 중 하나다. 식품이거나 애완용. 인간은 온갖 동물요리를 즐기면서, 한편에선 '동물 사랑'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이런 곤혹스러운 동물 사랑의 예가 나치 제3제국이다. 나치는 권력 장악 후 8주 만에 동물학대를 금지했지만, 유대인에게서 짜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썼다."(틸 바스티안 '가공된 신화, 인간')

기록에 나타난 동물보호법은 2200여 년 전 인도의 아소카 대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하고 곳곳에 동물 병원까지 세웠다.

사상 최악의 동물보호법은 17세기 일본에서 나왔다. 5대 쇼군인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1685년 '생류연민령(生類憐愍令)'을 공표했다. 처음엔 '중병에 걸린 생물을 내다버려서는 안 된다'는 정도였고 에도성에만 적용됐다. 2년 뒤엔 개나 말.소는 물론 물고기.뱀.쥐 등을 때리거나 상처 입히면 처벌받도록 강화됐다. 이후 닭.조개.새우 요리를 금하더니 60회의 포고령이 더해지면서, 급기야 어떤 생물이든 다치게 하면 인간이 처벌받는 터무니없는 법으로 발전했다.

닭을 키우는 것은 괜찮지만 달걀을 먹는 것은 금지됐다. 얼굴에 앉아 피를 빠는 모기를 죽였다가 유배를 당한 농민이 있는가 하면, 자식의 병에 특효약이라는 민간요법에 따라 제비를 잡아 먹인 아비가 처형되고 그 자식도 추방됐다. 개나 고양이 등을 죽였다가 도망가거나 죽은 사람이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들개가 늘어나자 호적대장을 만들어 개를 관리했고 에도성 근교에 약 20만 평의 개집도 지어줬다. 개를 먹이는 데 연간 금 9만 냥이 들었는데, 이는 당시 막부 수입 80만 냥의 11%였다. 쇼군은 "100년 뒤에도 이 법이 존속되게 하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그가 죽은 뒤 열흘 만에 폐지됐다.

농림부는 지난주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007년부터는 동물을 학대하면 지금보다 벌금을 10배 더 물고 더 센 처벌을 받는다. 더 이상 쓸개 뺏긴 곰이나 '못 박힌 고양이'가 생기지 않게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몸에 좋다면 바퀴벌레도 먹어치운다'는 한국인의 유별난 '동물 사랑'이 계속되는 한 이 땅의 동물들은 여전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식품이거나 애완용.

이정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