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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공장 1만곳 만들 테니, 원샷법 만들어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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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무인 운반차 등 IT와 첨단 설비가 결합된 ‘스마트 공장’인 경기도 오산 아모레퍼시픽 공장에서 현장 직원이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원료를 작업장으로 자동 운반하는 무인차.

경기도 오산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제조공장(뷰티사업장)에 가면 색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복도를 누비고 다니는 ‘무인 운반차’다. 운전자도 없는데 바닥에 깔린 이동선을 따라 필요한 재료를 생산 라인으로 척척 실어 나른다. 무인차에 탑재한 소프트웨어로 목적지를 입력하면 한치의 오차없이 명령을 수행한다. SF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모레는 2012년 경기도 수원, 경북 김천 등 곳곳에 흩어진 공장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생산 혁명’을 꿈꿨다. 축구장 30여 배 크기의 새 공장을 정보기술(IT)와 첨단 설비로 가득한 혁신 공장으로 만든 것이다. 생산에 투입되는 재료는 전산 프로그램으로 통제한다. 또 시간당 8000박스를 192개 배송 목적지별로 분류해 내는 물류 시스템도 자랑거리다.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집열판(사진)은 연간 20만㎾의 전기를 공급해 전기 비용을 줄인다.

아모레 제조 공장의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첨단으로 구축한 오산 사업장을 통해 아시안 뷰티를 세상 곳곳에 퍼뜨릴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모레의 이런 변신은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밑천’이 됐다. 지난해 7800억원 대였던 해외 매출이 올해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도 이런 경쟁력 덕분이다. ‘과감한 혁신과 도전’이 아모레를 1등 기업으로 이끈 것이다.

 아모레 같은 기업들이 더욱 많아지는 게 바로 ‘제조업 혁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기업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마침 대한상공회의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3만 상공인의 ‘거미줄 네트워크’를 활용해 2017년까지 1만 개의 ‘혁신 공장’ 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26일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에서 최경환 부총리와 정책 간담회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경제 재도약을 위한 ‘경제계 실천계획’과 ‘대정부 정책 제언’을 담은 ‘5+5 제언’을 내놓았다. ‘경제계가 5가지 계획을 확실하게 실천할테니, 정부도 경제계에 5가지 선물보따리를 풀라’고 제안한 것이다.

 먼저 실천계획에는 ▶첨단 설비를 갖춘 혁신공장을 1만개 조성하고 ▶사물 인터넷 등 신성장 부문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농어업·상공업 상생을 유도하고 ▶경제계와 국회의 소통을 강화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팀플레이에 적극 나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박용만 상의 회장은 “올해는 경제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할 중요한 시기”라며 “이해관계자 저항이 예상되고 국민 설득이 필요하지만 규제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의는 특히 ‘신(新) 기업가 정신’을 돌파구로 삼자고 강조했다.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에 창의성·혁신을 더해 ‘근원 경쟁력’을 키워 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상의가 함께 추진하는 ‘산업혁신운동 3.0’을 강화해 2017년까지 1만개 공장을 바꾸도록 하는 ‘혁신 기법’을 전파할 예정이다. 특히 생산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한 ‘스마트 공장’의 도입도 지원한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연구실장은 “독일의 경우 ‘인더스트리 4.0’이란 공장 자동화 혁신으로 산업경쟁력을 높였다”며 “상의가 대상 기업을 찾아 심사한 뒤 컨설팅을 거쳐 시설 지원 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의 대상은 아모레 같은 대기업 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LG전자의 협력업체로 전기저항기를 만드는 스마트 전자는 ‘제품 검사 시스템’을 디지털로 바꾸면서 불량률을 크게 줄였다. 불량 제품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해마다 1억3000만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꼭 거창한 첨단 기술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동서발전 협력사인 한성더스트킹은 먼지를 제거하는 집진기 제조업체다. 회사의 인력·생산·재무관리에 두루 쓰이는 경영관리시스템을 개발해 경쟁력을 높였다. 그 덕에 일본 도레이와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또 상의는 향후 ‘사물인터넷·3D 프린팅’ 처럼 최근 급부상하는 ‘신성장 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갈수록 악화하는 ‘청년 일자리’를 적극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규제다. 기업들이 선뜻 나서려 해도 규제가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상의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규제 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중 4위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일본 등과의 경쟁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의는 이날 ‘대정부 정책 제언’에서 “먼저 규제부터 경쟁국 수준으로 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나아가 혁신을 위해선 ‘원샷법’의 조속한 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신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면 ‘사업 구조 재편’이 필수다. 하지만 기존 사업 매각부터 인수·합병(M&A) 등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여러 법과 규제들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의 관련 제도를 ‘하나의 특별법’으로 해결하자는 게 바로 ‘원샷법’이다. 일본이 1999년부터 시행해 큰 효과를 봤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도 변화의 절박함을 드러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제대로 된 구조개혁을 한 적이 없다”며 “혁신은 선택지 없는 외나무 다리”라고 했다. 그리곤 “올해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골든 타임’인 만큼 신(新) 샌드위치 신세에 놓인 우리 경제의 혁신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술·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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