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배우기가 가장 어렵다 각대학에 유학 온 해외동포 2세들의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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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모국에서 배움의 열기를 태우는 해외동포 유학생들-.비록 말은 서투르지만 생김새가 우리와 똑같은 한 뿌리의 젊은이들이다. 때로는 외국인으로 오인을 받기도하고 자신들도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를 방황하고 있다. 방황과 모색의 시간을 거쳐 이제 한국인으로 확고한 인생관을 세워가는 이들 교포2세 젊은이들의 모국생활과 애환, 그들이 지금까지 보고 느낀 우리네 젊은이와 교육의 문제점을 알아본다.
6월말 현재 전국 각대학에서 수학중인 동포2세 유학생들은 모두 4백60명.
이 가운데 3백52명이 일본에서, 58명이 미국에서 유학왔고 나머지는 홍콩 쿠웨이트·캐나다 보르네오 볼리비아 등이다.
대학별로는 고려대에 1백1명으로 가장 많고 연세대69명, 이화여대 46순이다.
해외동포 유학생수는 62년도에 11명이던것이 매년 증가, 82년에 신규 70명, 금년엔 90명으로 21년만에 40배가 늘었다.

<애먹는 모국어>
동포2세 유학생들이 겪는 가장 큰 고생은 언어. 거의 대부분이 모국에 온 1년 동안은 우리말 공부에 소비하고 있다.
대학원과정을 공부하고있는 배문두씨(28 일본고오베)는 법과 전공으로 미국유학을 마친뒤 국어공부를 위해 서울대 재외국민교육원에 입학했다. 배씨는 『처음에는 「어」와「으」의 구별도 못해 애를 먹었지만 이제는 웬만한 의사소통은 한다』고 말했다.
교포학생들 사이에는 언어 때문에 갖가지 에피소드가 만발한다.
디스코장에서 나오는 같은과의 남학생을 보고 『너 땀난다』를 『너 탐난다』고 했다가 무안을 당한 여학생의이야기나 『명동』을 『영동』으로 발음해 엉뚱한 곳에서 차를 내려 혼이 났다는 것 등이다.
심하면 「쪽발이」니 「중국사람」이니 하며 지칭을 당하기도 한다. 결국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것이 모국에 유학온 가장 큰 이유다.
「수 S·안」양(21 미국시카코·69년 이민)은 『보다 한국인이 되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미국에서 한국인이 한국말을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에 속한다』고 했다.
안양은 교육원에서 금년말까지 국어를 익힌 다음 올12월에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
아동교육학을 전공하는 강용강양(21·일본오오사까)은 일본 동경의 한국학교 여교사. 강양은 『교육원에서 열심히 공부해 재일교포 유치원 어린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모국을 알고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다. 옛날처럼 노는 마음에다 유별난 옷차림으로 겉던 일은 없어졌다.

<다양한 대학생활>
언어의 장벽이 있는 교포 유학생이 학교공부를 따라가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재일동포 학생은 영어 단어 하나를 익히려면 일영·일한사전을 찾아야하는 수고를 당한다.
이런 고생을 극복, 모국어를 마스터한 학생들은 국내대학생들보다 다양한 대학생활을 즐긴다.
모국유학생모임의 회장인 정행광군(24 성균관대 사학과 일본동경)은 방학이면 일본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일본에서 막일을 하면 하루 2만∼3만원을 벌수 있어요. 한달만 열심히 일하면 한 학기는 꾸려갈 수 있지요』정군은『이번 여름방학 때도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자취하는 생활비를 벌 계획』이라고 말한다.
일본서 태어나 고등학교는 하와이에서 마친 한석민군(25 일본시꼬꾸)은 원래는재즈에 관심있는 음악도였으나 지금은 재외국인교육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군은 『주말이면 친구들과 조용한 호텔을 찾아 팝뮤직을 듣는 게 취미』 라며 『이번 여름방학때 일본에 계신 부모님과 상의해 학교와 전공을 결정해야겠다』고 했다.
교포학생들의 이성교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편. 재일교포유학생 H군(24)은 『고국에 온지 1년이 됐지만 아직 애인은 없다』며 『결혼은 국내 여성과 하고싶다』고 말한다.
강룡강양은『일본에서 교포남성과 결혼해야 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다』고 얼굴을 붉힌다.
많은 교포유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느정도 사귀면 결혼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는것에 당황한다.
『미팅도 서너번 했지요. 말이 서툴러 손짓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해 깊은 이야기는 할수 없었어요. 더우기 몇 번 만나면 상당한 부담이 와 지금은 조심하고 있어요 이대의 Y양(23 재미동포)의 이야기다.
한편 교포남학생들은 결혼상대자로 국내여성을 꼽는 수가 많다.
김영삼씨(33 재일교포 3세)는 서울대대학원에서 일문학을 전공할 계획인데 『결혼은 고국에서의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내여성과 하겠다』고 말한다.
정행광군도 『가능한 한 고국에 남아 한국여성과 결혼하고싶다』며『결혼상대로 일본여성을 생각해 본적은 없다』고했다.

<필요한 현지교육>
대부분 교포유학생들은 너무 모국을 모르는 상태로 온다. 그만큼 적응속도도 느리다.
재외 국민교육원 학생과장 김춘일씨(51)는 『교육원의 1년 예비코스를 마쳤지만 대학에서의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운 학생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보다 어렸을 때부터 모국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현지에서의 초 중 고 한국학교개설이 아쉬운 것이다.
또 일부 학생들이 목적의식 없이 찾아오는 것도 문제다. 부모의 권유로 한번 가보자는 식의 모국유학은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떳떳한 해외동포가 되겠다는 자각이 교포유학생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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