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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문학 터치] 순정은 멀고 삶은 팍팍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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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71년산 천운영이 등단했던 2000년. 그해 그는 신춘문예가 거둔 월척으로 비유됐다. 한 평론가는 "여태 이런 소설이 있었는가"라고 물었다. 이 신예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네 삶을 발언했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문장으로, 추하고 더러워 변두리에 놓여있는 삶을 말했다. 무언가 꿈틀대는 것 같았고,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책을 놓지도 못했다. 포기하면 더 불편할 것 같았다. 누구는 새로운 리얼리즘이라고, 누구는 육식성의 페미니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천운영은 그대로였지만 우리가 변했다. 더 이상 그는 낯설지 않다. 지난해 신춘문예 세 곳에서 그의 작품론이 평론 당선작으로 뽑혔다. 소설을 쓰는 신춘문예 지망생에겐 교범이 됐다. 천운영은 어느새 베껴야 할 작가가 돼있었다.

하여 불안했다. 이대로 주저앉을까, 걱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재주의라고, 희귀 소재만 편식하다간 금세 때 거리가 떨어진다고 싫은 소리 듣던 참이었다. 새로운 걸 보여주길 바랐고, 그 바람만큼 그대로 있어주길 또 바랐다.

천운영의 첫 장편 '잘 가라, 서커스'(문학동네)는 이렇듯 복잡한 심사와 함께 다가왔다. 장편의 화법은 단편과 판이하단 걸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소설은 의외로 쉬이 읽혔다. 그는 "편하게 썼고, 편하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편하게'라는 말이 툭, 걸린다. 불편해야 편했는데 편해지란다.

소설은 한국의 가난한 형제와 조선족 여인 림해화의 이야기다. 엇갈린 사랑 이야기에 상처투성이 사람 이야기를 쟁였다. 서커스 줄타기를 하듯 위태위태한 세 남녀의 삶이 퍽퍽하고 아린다.

변하지 않았다면 세 가지다. 하나는 장편도 치열한 체험을 거쳐 생산했다는 것. 조선족 이야기를 쓰기 위해 옌볜에 석 달 머물렀다. 장뇌삼을 밀수하는 배를 18시간씩 여섯 번 탔다. 오로지 소설을 위해 소를 잡고 멍게 맛을 표현하려 썩은 멍게를 씹어먹은 그녀다. 또 하나는 여기서도 여성은 강하다. 아니 독하다. 가슴 깊이 순정을 묻고 살지만 험한 세상 살아야겠기에 다부지게 추스르고 악다구니 버텨낸다. 마지막 하나는 낮은 곳의 이야기란 점이다. 그는 힘겹고 구차한, 하여 비루한 삶의 안쪽에서 바깥을 내다본다. 대학 졸업하고 조그만 아파트 장만한 이들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그는 외면한다. 그래서 좋다. "여성이 아니라 사람에 관하여 썼다"고 말해 좋다. 서커스에서 얻는 건, 혹여 삶과 비슷한 무언가를 서커스에서 찾는다면 그건 감동이 아니라 측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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