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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년 동안 청바지가 갈아입어온 청춘·저항·일상의 추억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소중 독자 윤재웅·김나현 학생(왼쪽부터)이 체험평가단으로 선발돼 청바지 특별전 전시를 관람했다. 청바지 관련 자료 390점을 둘러보며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전시다. 뒷쪽은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기증자들이 제공한 청바지 전시 조형물.

세상에 의미 없는 물건은 없습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은 그의 세상에 대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한 시대나 세대의 집단적인 의식이나 태도를 보여주는 물건도 있습니다. 집집마다 한 벌 정도는 있는 청바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청바지엔 세대의 추억, 세상을 보고 사회를 읽는 가치관이 녹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청바지엔 어떤 사연이 담겨 있나요? 청바지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엿보는 시도를 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옷,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청바지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청바지 특별전

기간 2월 23일까지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관람료 무료


실용이란 물음에서 탄생한 청바지

이건욱 학예연구사(왼쪽)가 청바지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청바지 특별전’ 현장에 소중 독자들이 나타났다. 전시 주제는 다소 독특했다. 청바지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삶에 녹아 있는 청바지의 추억을 돌이켜본다는 것이다. 청바지와 관련한 국내·외 역사·생활·문화 자료 390점과 청바지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구경할 수 있다.

“청바지는 광부들이 입던 튼튼한 작업복에서 탄생했어요. 한 청년 이민자가 실용성 있는 바지를 만들자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건욱 학예연구사가 소중 체험평가단을 맞아 설명을 시작했다. 편함·경쾌함·자유로움의 대명사로 알려진 청바지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청바지는 1853년 독일의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처음 만들었다. 미국 서부에 금을 캐러 사람들이 몰리던 ‘골드러시’ 붐이 일던 시절, 리바이 역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왔다. 하지만 그는 금을 캐는 대신 광부들의 옷이 쉽게 헤어지는 것을 보고 ‘튼튼한 천막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훗날 그는 청바지로 유명한 리바이스의 창업주가 됐다.

전시장 입구에는 청바지 재료인 데님(두꺼운 면직물의 일종)과 함께 제작 방법이 소개돼 있다. 흔히 말하는 청바지는 청색의 데님 원단으로 만든 바지다. 12조각으로 나뉜 청바지 설계도가 벽에 걸려 있고, 오래된 재봉틀과 함께 초창기 청바지를 만들던 방법도 볼 수 있게 구성했다.

6·25 전쟁 거치며 한국에 소개

청재킷과 청바지를 함께 입는 ‘청청패션’이 유행했던시기도 있었다.

청바지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6·25 전쟁 즈음이다. 참전한 미군들이 작업복으로 입었던 청바지가 전쟁 후 시장에서 팔리며 주목 받기 시작한 것. 특히 1964년 개봉한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주인공 신성일이 ‘진’이라 불린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청바지 남성 모델인 이재연 모델라인 회장은 “당시 청바지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고 회상했다. “제가 고등학생 때 몰래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가 맨발의 청춘이었어요. 영화 속 신성일씨가 입은 바지가 너무 멋져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청바지라는 거예요. 남대문 시장에 두세 번 갔는데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귀했죠.”

19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만든 청바지를 구입하거나, 검게 물들인 미군 작업복을 간신히 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후 국내에 공장이 들어서며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비로소 청바지 문화가 확산됐다.

당시 청바지는 청춘과 저항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된 1960~70년대의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든 채 부당한 현실에 맞서 삶을 노래하고 사랑을 꿈꿨다. 체험평가단은 당시 젊은이들이 즐겨 찾던 ‘쎄씨봉’ 같은 옛날 음악 다방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 공간으로 향했다. 작은 책상 너머로 DJ가 앉아 있는 유리벽이 보였고, 수북하게 쌓인 LP 음반과 함께 옛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공간을 관통하는 핵심은 청바지다. 음악 다방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젊음의 노래를 감상했다.

일상 속 청바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형 사진

컬러TV의 등장과 함께 ‘국민 바지’로

1980년대에 이르러 청바지는 젊은이들의 옷이라는 편견을 깨고 ‘국민 바지’로 거듭났다. 컬러TV의 등장 덕분이다. TV에는 청바지를 입고 여유를 즐기라는 광고가 인기를 끌었다. 가수 전영록이나 헐리우드 배우 브룩 쉴즈가 청바지를 입고 신나게 춤추는 광고를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청바지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교복을 입죠? 당시 학생이었던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교복 자율화 정책 때문에 교복 대신 사복을 입었어요. 이 때 애용했던 옷이 청바지랍니다.”

이 학예사는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청바지 전시 조형물을 가리켰다. 여기엔 1980년대를 살았던 기증자들이 제공한 청바지가 화려한 조명과 함께 걸려 있었다. ‘쎄시봉’의 청년들은 장년이 됐고, 이들의 자녀들은 교복 대신 청바지를 입었다. 1990년대에도 청바지의 유행은 계속됐다. 힙합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며 헐렁한 청바지가 유행했고, 패션 아이콘으로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청바지는 더 이상 자유와 저항, 특정계층을 상징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체험평가단이 마지막으로 구경한 전시물은 ‘청바지 만감’이다. 원형의 유리 벽과 바닥 사이에 수십 장의 청바지가 놓여 있는 장소로 기증자들의 사연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저희가 미국·영국·독일·일본 등지에서 현지 조사를 통해 수집한 청바지들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입던 청바지에 얽힌 사연들이 담겨 있어요. 이 청바지를 한 번 볼까요?”

학예사가 낡은 청바지 하나를 가리켰다. 일본의 청바지 회사인 재팬블루그룹을 창업한 마나베 히사오 회장이 즐겨 입던 것이다. 평생을 청바지 연구에 매진하면서 일본 청바지의 시작점인 도시 고지마를 ‘청바지 도시’로 명소화하는데 앞장섰다. 거의 매일 청바지를 입었던 그에게 청바지는 평생을 함께 한 인생의 파트너인 셈이다. 바지 밑단을 살짝 접어 올린 모양새는 지금 봐도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청바지에는 6가지 요소가 없다고 합니다. 나이·성별·계급·국가·계절·차별입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평등한 물건이라 불리는 이유죠.”

자유와 저항의 상징에서 현대인의 일상복이 되기까지, 청바지의 이야기를 살펴본 평가단은 뿌듯한 표정으로 체험을 마쳤다.

청바지 특별전에 가면···

양희은 데뷔음반(1971년) | 통기타와 청춘 문화의 아이콘인 양희은의 데뷔앨범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청바지에 기타를 배경으로 한 앨범 디자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청바지는 양희은의 상징과도 같았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청바지 문화에 대한 그의 경험과 사연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왼쪽부터 데님으로 만든 생활용품들, No More Tears, 미디어아트

데님으로 만든 생활용품들(2000년대) | 청바지 원단인 데님은 여러 생활용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데님으로 만든 인형이나 가방 등의 생활용품들이 전시된다.

No More Tears(2013년, 벤 베넘 작) | 미국의 현대미술가 벤 베넘이 데님을 활용해 만든 미술 작품이다. 신비주의와 신화를 주제로 한 하위문화나 비주류 문화를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그의 작품 3점이 출품됐다.

미디어아트(2014년) | 청바지를 자주 입는 사람뿐만 아니라 전혀 입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 대한 인터뷰가 포함된 영상이다. 문화계 인사, 청바지 업계 종사자, 일반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청바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중 체험평가단의 후기

김나현(서울 숭례초 4) | 얼마 전 책으로 청바지의 역사를 읽어 내용은 대강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느낌이 달랐다. 전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입었던 청바지 하나에도 시대에 얽힌 사연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시 제목처럼 특별한 청바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뜻 깊은 경험이었다.

윤재웅(경기도 화성 한마음초 4) | 누구나 청바지와 관련된 추억 몇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추억이 담긴 청바지 이야기뿐 아니라 역사와 종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서 볼거리가 많았다. 최초의 청바지 재료가 텐트를 만드는 천이라는 설명을 듣고 무척 놀랐다. 청바지를 바라본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추억으로 회자된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글=김록환 기자 ,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동행취재=김나현(서울 숭례초 4)·윤재웅(경기도 화성 한마음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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