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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근로계약 확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해외근로자의 고용조건과 후생녹지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결정은 더 시간을 두고 신중히 고려돼야한다.
이런 문제는 단순한 노사간의 관심사나 산업의 경쟁력만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여러 복합적인 소지를 안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 검토되고있는 해외근로자의 「표준 근로계약서 확인제」폐지문제도 바로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 제도가 채택된 기본배경이 해외건설취업이라는 특수한 고용여건을 1차적으로 고려한 결과임은 주지된 바와 같다.
70년대 중반이후 붐을 이루었던 해외건설진출이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이고 국내 연관산업의 확대와 고용의 종대를 함께 이룩한 공적은 아무도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해외건설사업만이 갖는 특수한 여건도한 물이 아니다.
우선 사업내용이 여느 국내계약과는 달리 나라의 위신을 바탕에 깔고있으며 각 사업자들이 갖는 총체적 경영·기술역량의 집약으로 수주활동이 이루어지는 점에 비추어 정부의 직·간접지원이 불가피한 반면 과당경쟁이나 무질서한 수주, 부실공사 등에 대한 관리·감독기능의 필요성도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정부가 일찍부터 해외건설에 관련된 여러측면의 관리와 견제장치를 갖춘 것도 이런 사정때문이며 표준근로계약서 확인제도 이와 연관된 정책장치였다.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이 표준계약서제도가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라해도 해외취업자의 고용안정과 그 결과로서의 능률향상, 국제적인 신뢰도 제고에 크게 기여해온 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70년대의 해외건설붐이 80년대의 유가하락과 더불어 퇴조하고 산유국들의 건설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건설업의 수익성과 경쟁력이 현저한 악화를 겪고있음은 알려진대로다.
해외취업자의 고용조건을 낮추려는 여러시도가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있음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고려에 넣더라도 이 제도를 하루아침에 폐지한다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만일 고용계약을 자율에 맡길 경우 그것은 해외취업자의 일방적 불이익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제도의 존속으로 해외취업자들은 계약기간·임금근로시간·재해보상, 기타 후생적 복리의 최저한을 지킬 수 있었다.
이제도가 페지될 경우 임금을 비롯한 각종 근로조건들이 경쟁적으로 악학될 것이 분명하고 이런 악순환적 경쟁이 종국에는 해외건설을 저렴한 국내노임의 바탕위에서 연명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사양길에 늘어선 해외건설업의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가 보다 종합적이며 장기적인 지원과 대책을 수립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임금이나 여러후생적 급여가 경영의 압박요인이 된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이 이루어지도록 정부가 조정역을 맡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비록 국내근로자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하나 근로의 질이나 효율성에서 인도·태국·필리핀 등 저임노동과는 비교할 수 없으며 해외사업에서의 자국인우대는 오히려 당연한 추세다. 더우기 해외취업자의 항공료까지 근로자에게 부담시키려는 움직임은 지나치다 아니할 수 없다.
하나의 해결은 현재의 계약확인제도를 존속시키되 그 기준을 다소 완화하는 방안이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임금수준만해도 이미 올 들어 해외취업자의 임금은 동결되고 있다. 이에 부가하여 항공료와 보험료까지 한꺼번에 부담시킨다면 근로자의 불이익은 너무 과중해진다. 따라서 근로조건결정의 자율화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단계적·선택적 조건완화를 정부가 지도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해외건설업의 경영개선은 자율경쟁에 맡기기 어려운 측면이 강하므로 정부의 종합대책의 차원에서 지원과정비가 검토될 성질이며 근로조건을 업계자율에 맡기는 일은 당장의 불을 끄자는 단견임을 지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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