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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 영화제 자리매김에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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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0년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호

부산영화제 개막식이 시작되기 직전 안성기 부위원장(左), 중국 배우 장첸(中) 앞에서 다른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는 김동호 위원장. [뉴시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인 요즘 김동호(68) 집행위원장의 하루는 거의 초인적인 수준이다. 기자회견.세미나 같은 공식행사부터 심사위원.후원사 등과의 조찬.오찬과 하루 두세 건씩 열리는 '○○영화의 밤'까지 매일 평균 17, 18건의 일정을 소화한다. 볼펜으로 빼곡히 일정을 직접 적어넣은 손바닥만한 수첩이 그의 유일한 비서라 "깜빡 행사를 놓칠 뻔하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암만 나이를 잊은 그일지라도 부산영화제의 눈부신 비상이 아니었다면 10년째 이런 강행군을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를 만나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 잡은 지난 10년에 방점을 찍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부산영화제의 모습을 들었다.

-10주년이라 더욱 바쁜 것 같습니다. 국내외 게스트도 예년의 두 배쯤 되고, 관객 수 역시 지난해를 훌쩍 넘어서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지난해까지 제가 하던 '새로운 물결'(아시아 영화를 대상으로 한 공식경쟁부문)의 감독 소개는 새로 부위원장이 된 안성기씨, 해외협력대사를 맡은 강수연씨에게 맡겼습니다. 관객들도 나보다는 안성기씨를 보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웃음) 그런데도 일정이 예년보다 훨씬 많네요."

-전에 가끔 딱 10년만 집행위원장을 맡겠다고 얘기한 것으로 압니다만.

"지금도 영상센터만 아니면 올해 끝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이나 2010년께까지 영상센터가 건립되면 부산영화제의 숙원이었던 전용관 확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예산 확보나 설계 확정 등에 의외로 난관이 많습니다. 그 밑그림이 확실해지면 그만둬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2회부터 기획 단계의 영화를 투자사와 맺어주는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을 시작해 이 작품들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또 부산영화제에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로 상영하는 것)로 소개하는 결실을 거두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칸영화제처럼 본격적인 필름마켓(영화를 팔고 사는 견본시)을 만들 계획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켓 때문에 홍콩영화제나 도쿄영화제에 밀릴 수도 있습니다. 홍콩의 경우 무역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마켓을 올해엔 영화제와 합쳐서 같은 기간에 열었습니다. 10월 말 열리는 일본 도쿄영화제도 산업경제성에서 4억 엔(약 40억원)을 투자해 마켓을 엽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지난해 미국의 아메리칸필름마켓(AFMA)이 유럽의 밀라노마켓(MIFED)과 같은 기간에 여니까 영화 관계자들이 다들 그쪽으로 몰려서 올해 밀라노는 아예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틈을 타서 베를린 영화제가 마켓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이런 추세에서 부산도 마켓을 열지 않으면 주도권을 도쿄.홍콩에 빼앗길 수 있습니다."

-마켓을 열려면 전문 인력도, 예산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할 텐데요.

"사실 예산이 문제입니다. 일본처럼 40억원까지는 아니어도 20억~30억원은 있어야 합니다. 부산시.산업자원부 쪽과도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기왕에 하려면 서둘러서 내년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력은 별도 부서가 필요합니다. 또 필름마켓만 할 거냐 방송프로그램 마켓도 할 거냐도 정해야 합니다. 방송까지 하려면 벡스코 같은 큰 장소가 행사장이 되겠지요."

-영화제 이후 부산에 영상위원회가 생겨 국내외 영화 제작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산업과 관련해 부산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요.

"영화진흥위원회.영상물등급위원회가 2010년까지 부산으로 이전할 예정입니다. 제2종합촬영소도 기장에 세워질 것 같습니다. 녹음.편집.특수효과 등 후반작업을 위한 시설도 추가로 세워질 것이고요. 이렇게 되면 상당히 많은 영화인력이 부산에 정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해외 영화인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는데 김 위원장의 주량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게 유명합니다. 사실 그보다도 해외 영화제에 갈 때마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행사 사진을 찍어주는 세심함이 인상적입니다.

"찍힌 사람 수대로 인화해서 분류를 해놨다가 다음 영화제를 갈 때마다 전해줍니다. 찍은 지 5년 만에 만나 전해준 경우도 있는데, 퍽 놀라더군요. 국내 감독들도 해외영화제 갔던 사람들은 사진이 다 있습니다. 올 베니스영화제 갈 때도 '친절한 금자씨'가 경쟁 부문에 올라서 전에 칸에서 찍은 최민식씨 사진을 이만큼 가져갔는데 안 왔더군요. 이번 부산영화제에서는 나눠줄 사진을 이만한 가방 하나로 가져와서 다른 사람에게 배포를 부탁했습니다. 제대로들 찾아가는지는 바빠서 못 챙겨봤습니다."

-부산영화제 초창기에는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부산 시내를 누비는 모습이 화제가 됐습니다.

"7회 때까지 그랬습니다. 남포동에서 이 사람 소개하고, 해운대에서 저 사람 소개해야 하는데 사이에 시간이 40분 정도밖에 안되니까 오토바이를 타야 했죠. 그 후로는 행사가 해운대에 집중돼서 안 타도 됩니다."

-영화제 이전에 문화부 차관까지 지내면서 공직자로 이룰 만큼 이뤘다고 보는데, 영화제 일을 하면서는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예산을 따내기 위해 이리저리 애걸도 하고, 구걸도 할 때면 이 나이에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그렇게 힘든 데도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뭡니까.

"집념이자, 오기죠. 이렇게까지 했으니 꼭 해내야겠다는."

-올 베니스 영화제 개막식에서 칸과 베를린 영화제 위원장 사이에 좌석이 배치된 것이 김동호 위원장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로 회자하곤 합니다. 지난 10년의 변화를 어떻게 몸으로 체감합니까.

"부산에서는 택시를 타든, 백화점을 가든 다들 알아보십니다. 사인을 청하기도 하고요. 서울서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이 많아 부산영화제가 정말 유명해졌구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충무로 영화인들이나 부산 시민들이나 국제영화제가 성공하겠느냐, 일회성이 아니냐고들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첫회부터 18만 명의 관객이 들었습니다. 열과 성으로 성원해준 부산 시민과 전국의 관객들 덕분입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영화제가 된 데 보람을 느낍니다."

-새로운 10년의 목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의 목표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서요. 올해 처음 시작한 아시아 필름 아카데미(AFA)가 좋은 예입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선발한 영화인들에게 영화제 기간 전후로 현장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겁니다. 수강생 중에 베를린 같은 다른 영화제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수강한 사람도 있는데 AFA가 훨씬 좋다고들 합니다. 특강 같은 방식이 아니라 허우샤오센, 논지 니미부르트, 유릭와이, 박기용 같은 감독들이 수강생들과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니까 더 생생하다는 얘깁니다. 내년에는 지원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 같습니다. 잘하면 아시아 최고의 영화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부산=이후남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김동호 위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61년 당시 문화공보부에서 말단인 주사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문화부 차관까지 올랐다. 영화진흥공사 사장.예술의전당 사장 등도 역임했다. 96년 제1회부터 지난 10년간 줄곧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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