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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왕상한의 왕직구

의료계 밥그릇 싸움에 환자는 안 보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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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왕상한
비상임 논설위원·서강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의사와 한의사, 두 종류의 ‘의사’가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25일 부산에서 열린 국회에서 국민의료법을 통과시킨 결과다. 이후 이 땅에는 현대의학과 한방이 각각 별도의 의료체계로 공인돼 왔다. 다만 의사는 한방을, 한의사는 현대 의료를 시술할 수 없다.

 환자는 자신의 병이 하루속히 낫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혼란스럽다. 질병의 예방과 치료, 그 증상에 대해 의학계와 한의학계가 너무나도 상반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질병이 심각할수록 치료법 선택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같은 질병을 놓고 양쪽의 처방과 치료는 전혀 다르다. 환자로서는 어느 쪽이 더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래서 환자들은 의학과 한의학을 동시에 선택하기도 한다. 실제 적지 않은 사람이 같은 질환을 병의원과 한의원에 가서 치료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의사나 한의사에게 말하는 환자들은 적다. 이실직고를 했다가 한방을 불신하는 의사로부터, 의사를 싫어하는 한의사로부터 행여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이 확실하지 않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채택함으로써 의료비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통의술에 의사면허를 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 북한 등 4개국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의사·한의사가 있는 게 아니라 의사는 그냥 의사일 뿐이다. 우리나라 의료법이 의사면허를 어떤 이유에서 이원화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국민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더욱 모르겠다. 같은 환자를 놓고 의사와 한의사가 서로 다른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할 때 환자는 과연 누구 말을 들어야 할까.

 의사와 한의사 간의 갈등은 국민을 늘 불안하게 했다. 최근에는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양측이 결사항전의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몇 주 전 정부는 한의사들이 현대식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료산업을 키우기 위한 포석이었지만 벌집 쑤신 듯 난리가 났다.

 의사협회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X선이나 초음파기기 사용을 영상의학 전문성이 부족한 한의사에게 허용하면 환자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다. 영상 검사로 환자를 진단하는 일은 영상의학을 전공한 의사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의사협회는 한의대에 영상의학 과목을 개설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일반병원에서 영상 검사를 받고 이를 다시 한의원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비와 보험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의사와 한의사 모두 ‘국민 건강증진’을 주장하지만 환자 눈에는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인다. 누가 옳은지보다 양쪽의 싸움으로 병원이 문을 닫고 그래서 필요한 치료를 못 받을까 전전긍긍할 뿐이다. 묻는다. 의료 이원화는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의사와 한의사들의 갈등으로 국민은 도대체 언제까지 불안해해야 할까.

 건강보험공단의 재정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사·한의사의 이원화된 의료체계는 재정난을 가중시킨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감기는 물론 퇴행성 질환이나 암 등 질병에 대해 현대의학과 한방을 사용할 때의 비용을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한 자료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비의 효율적인 지출은 불가능하다.

 현대의학과 한방을 동시에 처방할 경우 질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같은 환자에게 의학과 한의학 중 어떤 방법으로 치료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은 전무하다. 문제가 생기면 의학은 한방의 부작용으로, 한방은 의학의 부작용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환자를 생체실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의료체계다.

 게다가 적지 않은 의사와 한의사가 보완대체요법을 여과 없이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한방의 신비주의에 편승해 한방 삼계탕, 한방 딸기, 한방 족발 등 한방이라는 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실이다. 우리 사회 한쪽에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난립하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추상적 주장이 또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60년 이상 의학과 한의학이란 상이한 의료체계는 상호관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채 갈등과 대립만 키워 왔다. 이제 그 혼란을 끝내야 한다.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락한다면 차제에 한방 건강보험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이원화된 의료제도는 환자들의 중복 의료 이용으로 터무니없는 의료비 지출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질병 치료의 선택에 대한 혼란 및 중대한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원화된 면허체계를 일원화하고 의료 직역 간의 분쟁을 막는 법령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객관적·과학적 경험과 임상을 거치지 않은 이론은 단호히 배제하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의술만 허용해야 할 것이다.

왕상한 비상임 논설위원·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