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중화경제권이 똘똘 뭉쳐 달려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중화경제권의 경제 통합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대만.홍콩. 마카오 주민과 세계 각지의 화교 경제를 포괄하는 중화경제권은 아직까지 공식적.실질적 통합 단계로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중화인'들은 '통합을 통한 성장'을 가속화하면서 이제 새로운 통합 단계로 나가고 있다.

중화경제권이 하나의 경제 실체로 통합될 경우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4년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화인'은 14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22%가량을 차지한다. 경제적으로 중국.대만.홍콩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구매력 기준)는 7조6000억 달러로 미국(11조6000억 달러)과 유럽연합(EU.8조6000억 달러)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화교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5개국을 합친 GDP는 9조7000억 달러(전 세계 GDP의 17%)로 세계 2위다.

중국의 개방은 중화경제가 통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즉 중국의 성공적 개방의 일등공신은 화교였고, 역으로 화교들은 중국의 개방으로 급속한 성장의 활로를 찾았다. 1983년 이후 올 초까지 화상의 본거지인 홍콩.대만.싱가포르와 동남아 각국이 중국에 투자한 돈은 전체 대(對)중국 투자의 80%를 넘는다. 게다가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에 복귀함으로써 통합을 위한 정치적 계기도 마련됐다.

최근 중화경제권의 결속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이 주목을 끈다. 하나는 2004년 1월부터 발효된 '중국-홍콩 간 긴밀한 경제협력 관계협정(CEPA.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이다. 이 협약은 홍콩이 원산지인 상품을 무관세로 중국에 들여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특히 2006년 1월부터는 대상 분야가 모든 화물무역과 운수.건설.여행업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화상의 본거지인 홍콩은 이제 대륙경제와 명실상부한 통합을 이뤘다.

다른 하나는 지난 7월 발효된 중-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이 계획에 따라 올 7월부터 관세 인하를 시작해 중국과 6개 선발국은 2010년까지, 4개 후발국(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은 2015년까지 관세가 없는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한다. 동남아가 화교 상권임을 감안하면 이 FTA는 사실상 동남아 화교와 중국 간의 자유무역지대 구축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중화경제권 간 협력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그렇다면 중화경제권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기회로 바꿀 것인가. 해답은 역시 대륙.대만.홍콩.동남아 각국을 별개로 보던 과거의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중화경제권을 통합된 실체로 보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중화경제권과의 협력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는 우리 기업과 화교자본의 중국 동반 진출이다. 이 방식은 화교의 문화, 언어적 소통능력을 이용할 수 있어 효과적으로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는 중국 대륙에 편중된 기존의 대중화권 투자를 홍콩.동남아 등지로 다각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도한 중국 의존에 따른 위험을 줄이면서 중국시장에 대한 우회진출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중-홍콩 CEPA와 중-아세안 FTA 발효에 따라 우리 기업이 홍콩과 동남아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중국시장에서 국내 생산품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화상(華商)을 적극적으로 국내로 끌어들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도 동북아의 핵심 역량인 화상의 협조가 필요하다. 최근 중화경제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과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8차 세계화상대회는 대중화권 교류를 강화하는 소중한 기회다.

현오석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