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논란 이중섭·박수근 작품 58점 전문가 16명 전원 가짜 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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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7일 "국립현대미술관에 의뢰해 두 화가의 작품 58점(이 화백 39점, 박 화백 19점)에 대해 안목(眼目) 감정을 실시한 결과 대학교수.화가.화랑대표 등 감정위원 16명 전원이 모두 위작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에서도 이들 그림에 기재된 서명들이 기존 진품의 서명과 다르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들 감정 결과에 따라 이 화백의 차남 태성씨가 "유족의 소장품을 가짜로 몰았다"며 명예훼손.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한 송모씨 등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소속 감정위원 4명에 대해 무혐의 결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 그림을 보관 또는 기증해 온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이 그림 위조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어 추가 수사를 벌여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검찰은 또 가짜 작품들이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김 명예회장 등이 소장한 작품 2740점을 압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문제의 58점 중 3점을 뽑아 모 대학 연구소에 의뢰해 작품의 종이에 함유된 방사성 탄소 함유량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점의 제작연도는 1954년이었으나 종이가 만들어진 시기는 1962년으로 차이가 나 위작으로 판정됐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3월 "태성씨가 경매에 내놓은 이 화백 작품과 이중섭 50주기 기념 미발표작 전시준비위원회(위원장 김용수)가 소장한 작품들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하재식 기자

풀리지 않는 진위 공방
2740점 만든 '복제조직' 있나
소장자 김용수씨 측 "진품 확실 … 민사소송 낼 것"

'가짜냐, 진짜냐'를 놓고 일곱 달 넘게 끌어온 화가 이중섭(1906~56)과 박수근(1914~65) 작품의 진위 공방이 결국 가짜로 결론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현대미술사상 최대의 위작 분쟁 사건으로 불리는 이중섭.박수근 유작 시비는 검찰 발표로 일단 마무리됐다. 검찰은 앞으로 위작범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술계는 검찰의 의지도 시간이 지나며 묻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술계가 지적하는 의문과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3000점 가까운 김용수씨 소유의 두 작가 작품이 과연 누구 손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왜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났는가 하는 점이다.

검찰은 전문기관 세 곳과 전문가 10여 명을 동원해 안목 감정, 종이 제작연대 측정, 필적 감정 등을 한 결과 위품을 대량 제작한 것으로 짐작되는 일종의 시스템을 발견했다. 검찰 측 감정위원들은 복제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제1 유형은 원화를 그대로 모사하거나 복사한 뒤 색상만 변화시켜 제작한 것, 제2 유형은 부분적인 도상을 잘라내 독립된 그림으로 제작하는 방법이다. 이태성씨와 김용수씨 측은 한 도상을 되풀이해 그리거나 습작하는 것이 이중섭의 특징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그 많은 스케치나 에스키스(밑그림)에 모두 서명을 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작품 유통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서울옥션(대표 이호재)과 이태성씨의 일본인 사업 파트너 마크 핫도리의 분명하지 못한 행동과 자주 바뀐 말이다.

서울옥션은 경매 출품을 의뢰한 이는 유족 이태성씨라 했으나 실제는 마크 핫도리였고 경매대금도 마크가 관리했다. 셋째는 유족과 서울옥션뿐 아니라 여러 화랑과 개인에게 이중섭.박수근 작품을 유통시키려 한 김용수씨의 의도다.

사건의 발단이 됐던 서울옥션은 7일 검찰의 발표 내용을 존중한다며 미술계에 혼란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이호재 대표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유족 작품을 의심할 수 있느냐고 큰소리쳤던 이태성씨는 "검찰 수사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김용수씨 측 변호사는 민사소송을 내고 계속 진품임을 주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압수된 2740점의 그림이 앞으로 진실을 말하기를 미술계는 기대하고 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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