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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세 오빠 북송 뒤 아버지 후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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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6일 개막한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초반부터 달아오르고 있다. 주말 부산에는 시네마의 향연이 펼쳐진다.14일까지 73개국 307편이 상영된다. 분단의 고달픈 현실을 다룬 '안녕 평양'의 재일동포 감독 양영희씨와 '장미의 이름''베어'로 유명한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를 만났다.

조총련 출신 재일동포 양영희감독
'안녕 평양'에 가족사 슬픔 담아

'아버지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조총련)의 열성 간부 출신, 오빠 셋은 재일동포 북송사업에 의해 평양으로 이주.'

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안녕 평양'에는 재일동포 양영희(梁英姬.40.사진) 감독의 힘겨운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말처럼 이 작품에는 재일동포들의 60년 역사가 압축돼 있다.

양 감독의 아버지는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지만 해방 후 북한 국적을 선택한다. 소련의 영향 아래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북한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1971년에는 '조국에 충성하기 위해' 어린 딸 만 남기고 아들 셋을 모두 북한으로 보낸다. 그 중에는 철모르는 중학생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로부터 30년. 오빠 가족들은 평양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어머니가 보내주는 돈과 옷가지는 그들에겐 귀한 생명줄이다.

아버지는 뒤늦게 자식들을 북한에 보낸 것을 후회한다.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어. 보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죽으면 열심히 살았다고 말해다오. 가족들이 기다리는 평양으로 가고 싶어"라고 말한다. 딸은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어루만진다.

다큐멘터리에 비친 평양의 모습은 생생하다. 김일성 동상 뒤에는 오래 전에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밤에는 툭하면 전기가 끊긴다. 촬영 당시 검열을 받기는 했지만 아주 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치는 잘 모르겠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심하죠. 그런 중에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거든요."

이번 작품은 양 감독의 데뷔작이다. '안녕 평양'은 부산영화제에 이어 일본의 야마가타(山形)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도 10일 상영된다.

"한국에서 먼저 작품을 발표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져서 다행이에요. 한국과 일본의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요. 아마 일본에서는 협박 편지 같은 것을 받을지도 몰라요."

미국에서 6년간 유학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양 감독은 1시간반짜리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지난 10년간 100시간이 넘는 분량을 비디오로 찍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제 아버지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려 한다. 딸로서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사상은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엔 북한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얻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동안 집안 배경이 무거운 짐이었지요. 이제는 짐을 벗고, 못하던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요. 병석에 있는 아버지도 이해해 주실 거예요."

부산=글 주정완, 사진 송봉근 기자

"한국 배우들 카리스마 철철"
'투 브라더스' 장 자크 아노 감독

"사람에게도 동물적인 본능이 있죠. 이렇게 저렇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 본능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더 원초적이고 강렬한 연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걸 동물배우와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영화 '투 브라더스'(8일 상영)로 부산영화제를 찾은 프랑스 장 자크 아노(사진) 감독의 말이다. 곰을 주인공 삼은 '베어'(1988년)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그가 이번에 등장시킨 주연은 호랑이다. 사냥꾼 때문에 헤어져 자란 호랑이 형제가 극적으로 다시 만나 우애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한국방문이 처음인 그는 전날 개막식에 대해 "유럽의 영화제와 달리 관객이 배우.창작자와 편안히 어울리는 분위기가 매력적"이라면서 특히 "참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한국배우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했다. "아시아 다른 나라 영화에 왜 한국배우가 많이 출연하는지 알겠더라"면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시아 배우를 찾고 있는데, 나중에 한국배우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덧붙인다.

"동물배우와 일하고 난 뒤로 많이 달라졌어요. 전에는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가며 캐스팅을 했는데도 적합한 배우를 찾기가 힘들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1초면 돼요. '베어'를 찍고 난 뒤 '연인'을 준비할 때는 여배우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바로 이 배우다, 하는 느낌이 왔죠."

프랑스 출신이면서도 그는 할리우드를 포함한 다국적 자본.배우.로케이션으로 대중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의 초점도 마찬가지다. "오늘 시간을 내 한국영화 DVD를 20편쯤 사러갈 것"이라면서 "프랑스에서 본 박찬욱.임권택 감독뿐 아니라 한국관객들이 아주 많이 본 영화들을 좀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글 이후남 기자<hoonam@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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