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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한국 6자회담서 별 도움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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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사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한국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산케이 신문이 5일 보도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도 이 보도를 확인하고, "힐은 한국이 북한 문제에서 너무 앞서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힐 차관보는 지난달 29일 한반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6자회담에서 한국은 미국에 별로 도움이 안 됐다"고 밝혔다. 또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이 세미나에 참석한 것을 확인하고 "메모를 해서 서울에 보고해도 좋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한국이 사전 연락 없이 북한에 대한 포괄적 지원 방안을 제시한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또 6자회담에서 경수로 논의 시점을 놓고 북.미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일본과 러시아는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던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힐의 발언에 대해 ▶한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흘리고▶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북한을 초청할 뜻을 비쳤으며▶결정되지도 않은 힐의 방북설을 퍼뜨리는 등 한국이 대북정책에서 너무 앞서 나가고 있는 점에 대한 불만 표시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앞서 힐은 지난달 2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당신의 방북설이 처음 흘러나온 데 불편해 한다는 얘기가 사실이냐"는 질문에 "한국민의 북핵 해결 열망을 이해한다"며 직답을 피했다. 또 북한의 APEC 참가와 한국의 대북 경수로 제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6일(현지시간) 힐을 출석시킨 가운데 청문회를 열어 6자회담 공동성명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따질 예정"이라며 "미 의회와 행정부 내 강경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베이징 합의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이 너무 앞서가는 인상을 주면 협상파인 힐의 입지는 한층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힐은 확실한 한.미 공조와 대북정책 속도 조절을 한국 측에 주문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힐의 발언에 대해 "오프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연설이었다"며 "코멘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사관은 힐의 발언 내용을 서울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도쿄=강찬호.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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