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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새 패러다임 … 콘텐트 이어 포맷과 플랫폼도 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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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호 14면

웹툰은 2003년 등장했다. 다음이 ‘만화 속 세상’ 코너를 열고 윤태호·강풀 등 유명 작가와 손을 잡았다. 2005년엔 네이버도 ‘네이버 웹툰’을 시작했다. 수익이 목적이 아니었던 대형 포털은 무료로 웹툰을 유통했다. 이때만 해도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의 웹툰은 비주류가 열광하는 대안 콘텐트였다.

글로벌화 원년, 한국 웹툰 제2전성기

웹툰이 돈이 된 건 다른 콘텐트와 손을 잡으면서다. 2006년 강풀의 ‘아파트’가 웹툰 최초로 영화화됐고, 그의 다른 작품 ‘순정만화’ ‘이웃사람’ ‘26년’과 윤태호의 ‘이끼’ 등이 잇따라 영화로 나왔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영화·연극·드라마로 선보이며 다양한 장르에 접목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3년 영화로 나온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700만 관객을 끌어모았고 판권 시장이 끓어올랐다.

여기까지가 웹툰 제1 전성기다. 지난해부터 웹툰의 가능성과 확장성은 거대해졌다. 유료화 모델이 자리 잡고 해외시장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제2 전성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어로 1200개, 중국어로 500개 올라와
위아래로 스크롤해 한 컷씩 보는 웹툰은 출판 만화와는 전혀 다른 서사 방식을 가졌다. 좌우로 책장을 넘겨 여러 컷을 한 번에 보던 해외 독자에겐 생소한 형식이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세계 시장 역시 한국의 독특한 만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벤저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수퍼히어로로 유명한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 마블은 다음카카오를 통해 웹툰을 선보였다. ‘어벤저스: 일렉트릭 레인’이다. 한국을 방문한 마블의 수석부사장 CB 셰블스키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에 흥미를 보이면서 시작된 협업이다. 어벤저스의 캐릭터와 세계관이 국내 작가의 그림과 이야기로 재창작됐다. 열혈팬을 거느린 콘텐트라 독자들의 반응은 엇갈리지만 회사 측은 협업에 의미를 두고 있다. 다음카카오 박정서 웹툰 서비스 총괄은 “세계적인 콘텐트 업체와의 협업은 새로운 시도이고, 한국 작가가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7월 ‘라인 웹툰’을 출시했다. 영어·중국어·태국어로 수십 편의 한국 웹툰을 번역해 소개하고, 세계 작가의 작품도 연재한다. 사업 초기 네이버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챌린저 리그’다. 한국 네이버웹툰에 있는 ‘도전 만화’처럼 자유롭게 웹툰을 올릴 수 있는 장이다. 지금까지 14만 명이 작품을 올린 ‘도전 만화’는 작가의 산실로 네이버웹툰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식 연재 작가의 80%가 ‘도전 만화’ 출신이다.

“창작자가 생기고 소비층이 생겨서 대중화되는 게 중요하다”는 네이버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이른바 생태계를 구성하는 이런 방식은 해외시장을 겨냥한 ‘라인 웹툰’에도 유효하다. 지금까지 전 세계 예비 작가가 ‘챌린지리그’에 올린 작품 수는 영어로 약 1200개, 중국어로 500개다.

‘타파스틱’은 2012년 북미 최초로 문을 연 웹툰 플랫폼이다. 번역된 한국 작품 80여 편을 비롯해 작가 4000여 명의 7000편 넘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타파스틱을 운영하는 타파스미디어에 따르면 현지 독자의 반응은 좋다. 웹사이트 인기 순위를 매기는 ‘알렉사닷컴(alexa.com)’에서 미국 만화산업의 양대 산맥인 DC코믹스와 순위를 겨룰 정도다. 다음카카오도 200만 달러를 투자, 다음 웹툰 연재작 일부를 번역해 ‘타파스틱’에 선보이고 있다.

연재 공간이 확장되자 기획 단계에서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는 일도 생겼다. 영어권 국가에선 어떤 캐릭터를 선호하는지, 문화에 따라 금기시하는 소재는 무엇인지 등을 고려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인기 있는 작품에 광고, 1년 100억설
차세대 한류 콘텐트는 웹툰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타파스미디어 김창원 대표는 “웹툰-게임-드라마-영화-팬시상품 등이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시스템이 해외에 이식되고, 해외 진출 웹툰 중 성공작이 나오면 게임·K팝 못지않은 한류 콘텐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대 한창완(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도 “스마트폰 환경만 구축되면 유럽에 망가가 들어간 것처럼 웹툰이 한류를 이끌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내다보는 웹툰 한류의 성격은 K팝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한류가 콘텐트 중심이었다면 웹툰은 포맷과 플랫폼을 유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가 포맷의 예로 든 것은 ‘생활툰’이다. 형식·내용에 제약이 없어 탄생한 웹툰만의 장르다. 일상의 소소한 경험으로 얻은 공감·개그·깨달음을 편하게 전달한다. 한국과 일본·미국의 일상은 다르지만 포맷은 수출 가능하다. 실제 ‘라인 웹툰’엔 ‘생활툰’이 ‘Slice of Life’라 번역돼 장르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웹툰 플랫폼을 세계로 유통하는 건 수익으로 직접 연결된다. 이는 웹툰 플랫폼의 변신과 관련 있다. 정보기술(IT) 환경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포털 사용 방식도 바뀌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하는 콘텐트로 직접 접속이 가능해지면서 포털 초기화면에 걸리는 배너 광고의 매력이 예전만 못하게 됐다. 광고는 인기 콘텐트를 찾아갔고, 현재 가장 각광받는 것은 웹툰이다.

네이버는 최근 2013년 발표한 PPS(Page Profit Share)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유료 연재, 광고 게재, 파생 상품 판매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작가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광고 수익 모델이 등장한 후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다수엔 광고가 붙는다. “인터넷 사용자의 30%는 매일 웹툰을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만큼 고정팬을 확보한 웹툰의 광고 값은 만만치 않다. 업계에선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의 광고를 1년 독점하려면 최소 100억원은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네이버 측은 “PPS프로그램은 작가와 플랫폼이 ‘윈-윈’하는 구조”라며 “웹툰의 목적을 수익으로 두지는 않지만 비즈니스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런 모델이 플랫폼과 함께 해외에서 자리 잡으면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모바일 기기 보급률이 높아지면 개인 중심의 미디어 환경에서 최적화된 웹툰이 해외 광고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망가의 자리 차지하게 될 것”
웹툰의 잠재성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진행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중소 웹툰 플랫폼을 육성하고 번역을 지원하기로 했다. 웹툰의 진화도 이뤄지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음성·음악·영상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효과를 더한 웹툰 ‘공뷰’를 지난달 선보였다. 모바일 기기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실험이다.

고려할 점도 있다. 타파스미디어 김창원 대표는 “문화의 이질성이 있어 특히 유머 감각이 다른 개그 소재는 히트한 게 없다”고 했다. 또 “감칠맛 나는 번역으로 문화적 차이를 좁히고 재미를 배가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제1회 세계웹툰포럼’이 열렸다. 각국 만화산업 전문가가 모인 자리에선 한국 웹툰의 세계화가 논의됐다. 여기엔 2012년 문을 연 프랑스어권 최초의 웹툰 포털 ‘델리툰(Delitoon.com)’의 디디에 보르그 대표도 참석했다. 망가(일본 만화)가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유럽 만화 선진국에서 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망가의 자리에 한국 웹툰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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