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차라리 북한에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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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탈북인권연대 등 단체 관계자들이 5일 정부 중앙청사 후문에서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송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장기수 북송 방침을 확정하자 시민단체와 야당이 납북자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5일 이봉조 통일부 차관이 귀환 납북자 4명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로 불러 면담한 자리에서 귀환자들은 장기수 송환에 앞선 납북자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동석했던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장기수 북송엔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잘못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차관은 "장기수들을 바로 보내는 것은 아니며 송환엔 시간이 필요하다"며 답을 피했다. 대신 "정부는 북에 남은 분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들의 귀환을 당당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귀환 납북자들은 면담 후 기자회견에서 반발을 토해냈다. 이재근(69)씨는 "나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고향에 돌아왔는데 장기수들을 다 올려보내면 북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서해 연평도에서 고기를 잡던 중 북한에 끌려갔다 30년 만인 2000년에야 북한을 탈출했다. 최성용 대표도 "정부는 장기수 송환 방침을 재고해야 한다"며 "이미 남북 간 각종 접촉에서 장기수를 다 보내기로 합의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세종로 청사 앞에선 피랍탈북인권연대 등의 장기수 송환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은 "정부는 차라리 북한에 배워라. 납북 자국민도 보호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장기수들의 인권을 얘기하는가"라고 외쳤다. 이들은 당국자 면담을 요구하다 전경들에게 제지됐다.

야권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장기수들의 일방적 송환은 있을 수 없으며, 정부는 국군포로.납북자 송환을 요구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장기수와 납북자 문제 사이에서 통일부는 처신이 어렵다. 최근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확인한 북한의 태도는 완강했다. 그렇다고 북으로 올라가겠다는 장기수들을 모른 체하기엔 인권 논란이 나온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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