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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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색등이 현란하다. 도심 대로에도 곳곳에 등이 매달려 초파일의 무드가 일렁인다.
초파일을 일명 연등절이라고도 한다. 관등, 등석, 방등, 등절 모두 같은 말이다. 하나같이 「등」이 밝혀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유래는 연등불이다. 아득히 끝이 보이지 않는 멀고 먼 옛날(제2 아증기겁)에 이 불이 출현해 석존에게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리라는 기별을 주었다. 그때 석존은 꽃을 바치고 또 머리를 깎아 진흙을 덮고 성불의 표를 받았다고 한다. 바로 그 연등불이 살아있을 때 일체의 신변이 등과 같이 밝고 현란했다. 연등태자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연등절의 행사는 예부터 전해왔다. 탄생불의 모습을 연꽃으로 꾸미고 때로는 향수까지 뿌렸다. 여기에 수박등, 연화등, 일월등을 밝혀 문자 그대로 관등절이었다.
연꽃의 유래는 역시 석가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석가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바로 7보를 걸어갔다. 그 발자국마다 눈부신 연꽃이 피었다고 한다.
오늘엔 연꽃이나 등불이 모두 심상찮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흙탕물 속에서도 홀로 장려한 꽃을 피우는 것이 연화다. 등불은 곧 부처님의 마음을 상징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무한하고 영원한 부처님의 마음을 저마다 깊은 곳에 간직하고 산다는 것이다.
불교의 교훈에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말이 있다.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하여 남을 의지처로 하지 말 것이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하여 남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노쇠할 대로 노쇠한 80 고령의 「붓다」(불타)는 임종을 앞두고 「아난다」(아난타)의 청원을 받아들여 이런 유언을 했다.
자기를 구원할 메시아는 멀리 하늘이나 자기의 외부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과 진리(법) 속에 있다는 설파.
이런 일화도 있다. 어떤 제자가 「붓다」에게 물었다. 『악인이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성심껏 기도하면 그 영혼이 천국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붓다」는 말했다. 『못에 돌을 던진 다음, 너희들이 그 주위를 돌면서 돌아, 떠올라라. 돌아, 떠올라라」 한다면 그 돌이 떠오르겠느냐.』
「붓다」는 『참으로 자기만이 자기의 주인이며, 자기야말로 자기의 의지처다』고 가르친다.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약하고, 거짓에 차있고, 허물 많은 자아를 발견하고 한탄한다.
이런 범인에게 「붓다」는 『너만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는 냉혹한 경구를 던져준 것이다.
바로 그 「붓다」의 마음을 밝힌 등불은 바람만 불어도, 기침을 해도 꺼지기 쉬운 불이다. 그야말로 일거수 일투족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을 밝힌 등, 우리 마음속의 등을 온전히 지키려면 겸허한 몸가짐이 있어야 한다. 석가탄일의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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