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집권당과 청와대의 파열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 문건 배후 논란은 삐걱대고 있는 청와대와 집권당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대화가 단절되면서 집권세력 주변에 루머와 억측, 음습한 뒷담화가 난무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게 집권 3년차 당청관계의 현주소라니 실망을 넘어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김 대표의 수첩에 적혀 있던 ‘청와대 문건 배후는 K, Y’ 메모 논란은 당사자들 간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준석 전 비상대책위원은 “지난해 12월 18일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문건 사건의 배후는 김무성(K) 대표와 유승민(Y) 의원이란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파장이 커지자 음 행정관은 사표를 냈다. 하지만 “김 대표·유 의원을 배후로 지목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둘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한낱 행정관에 불과한 한 인사의 술자리 발언으로 당과 청와대가 술렁대고 있는 점이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광경이다. 공교롭게도 음 행정관의 술자리 발언 다음날인 지난달 19일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의원 7명의 청와대 만찬이 있었다. 당을 이끌고 있는 김 대표가 빠진 게 알려지면서 “박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온 김 대표를 왕따시킨 것 아니냐”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 기억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또다시 문건 배후 운운하는 얘기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당·청 관계가 정상 궤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음 행정관이 ‘정윤회 문건’에 들어 있던 십상시(十常侍) 명단에 올랐던 친박근혜 핵심 그룹이란 점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고리 3인방도 부족해 행정관까지 나서 헛소리를 하고 돌아다닌다”(이재오 의원)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배후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기가 막히다”(김 대표), “그런 말 안 했다는데 내가 행정관과 다투겠나”(유 의원)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청 간 소통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는 어제 오후 음 행정관을 면직처리했다. 김 대표도 “대통령과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음 행정관의 발언을 단순한 ‘술자리 뒷담화’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음 행정관이 배후 운운한 게 사실이라면 청와대 문건 사건이 몇몇 공직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강을 무너뜨린 일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게 된다. 청와대는 음 행정관에 대한 면직 처리로 그칠 게 아니라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인사 쇄신을 더는 늦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