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위헌 소지있다"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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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산하 법원행정처를 통해 "헌법상 소급효 금지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법률검토 의견서를 국회 법사위에 제출했다"고 2일 밝혔다.

대법원은 "특례법안에 열거된 단순 살인죄나 폭행.가혹행위죄를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집단살해죄 방지와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에 규정된 범죄로 볼 수 있는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이원영 의원이 여당 등 145명 의원의 찬성을 받아 7월 중순 대표발의한 특례법안은 '공무원이 직무수행과 관련해 형법상 살인죄나 폭행.가혹행위죄, 군형법상 가혹행위죄를 범한 경우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한다(2조)'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특례법 3조에서는 '살인이나 가혹행위 등에 대한 조작.은폐 행위가 개시된 때부터 그런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조작.은폐 행위의 시점이 모호하고, 공무원에 대해 지나친 차별이라는 논란이 예상된다"며 "특례법처럼 특정 범죄들만 예외적으로 취급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면 법적 안정성이 심하게 훼손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는 국민적.인종적.민족적.종교적 집단의 전부나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집단살해로 규정하고 있다.

김종문 기자

대법원 왜 반대하나
"헌법상 소급금지 원칙 위반 법적 안정성 심각하게 훼손"

대법원은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특례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공소시효의 배제나 정지 문제가 "헌법상 소급효 금지원칙과 평등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범죄의 처벌을 기존의 법 규정이 아닌, 예외적으로 정하게 되면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법원의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실에서는 해당 특례법안에 대해 "정의를 회복하는 중대한 공익이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의견을 정리해 향후 국회 내 입법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 "법적 안정성에 훼손 우려"=대법원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검토 의견서에서 지적한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다. ▶집단살해가 아닌 단순 살인죄, 폭행.가혹행위죄가 공소시효 배제 대상인지▶조작.은폐 행위의 시작되고, 밝혀진 시점을 정하는 것이 모호하고▶공무원에 대한 지나친 차별이라는 시비 발생▶공소시효 예외규정에 따른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국제관습법상 반인도 범죄, 집단 살해죄에 공소시효를 배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를 특례법에서 열거한 단순 살인죄 등에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의견이다. 외국의 경우 집단 살해, 전쟁 범죄 등 반인륜 범죄의 경우에만 공소시효를 배제한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현행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가 규정돼 있고, 시효완성에 대해서는 면소판결을 하도록 돼 있다"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의 소추권이 상실된다고 밝혔다. 형소법 249조에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는 15년 등 범죄의 경중에 따라 공소시효가 정해져 있다. 또 형소법 326조에는 확정판결이나 사면, 공소시효의 완성 등의 경우 소송절차가 종료된다고 돼 있다.

◆ "예외 확대는 안 돼"=법조계에서는 "공소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는 범죄가 많아질 경우 자칫 국가기관 종사자의 인권이 침해되고, 국가기관의 적법한 행위조차 위축될 수 있다"는 반응이다. 대한변협 등은 "현행 헌법 13조는 소급입법에 의한 처벌을 금지하고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반면 민변 등에서는 "인권침해를 처벌하는 게 헌법 정신"이라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명백한 증거가 나올 경우 처벌할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지한다.

◆ 공소시효란=범죄를 저지른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검사의 공소권이 없어져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한 제도다. 범죄 발생 후 많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난 사실관계를 존중해 법적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게 목적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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