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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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기 떼가 연평을 경유해서 대청 소청 앞바다를 지나가는 철이 돌아왔다. 벌써부터 먼 곳에서 갈매기들이 모여들고 있는지, 새벽 바람을 타고 먼바다에서 울부짖는 갈매기들의 음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어망을 짜고 배를 수선하고 돛을 기웠는데 어계의 총대 되는 사람이 주도하여 별신굿을 벌일 준비를 서둘렀다. 당산나무 밑에 들맞이를 하고 나서 산신제를 지낸 다음, 바닷가에 각종 제물을 펼쳐놓고 용왕제를 지내고서, 오색 융복에 전립을 쓴 무당이 밤굿을 벌였다. 몰려온 고기는 잡아야 하지만 일기를 헤아릴 수 없으니 살아 돌아오기도 딱히 기약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이튿날 새벽에 출어기를 올린 어선들이 바다로 나갔고, 매도 그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면서 전송했다.

보름 뒤에 배가 만선이 되어 돌아왔으니, 온 마을이 들끓는 듯한 잔치가 벌어졌는데 그것은 험한 바다에서 되살아온 신생(新生)을 위해서였다. 한데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마을에서 매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매가 없어진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기억에 의하면 마을의 매가 바다로 날아간 지 벌써 사흘이 넘었다는 것이다. 어른들도 그런 일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모두들 바다 쪽 수평선을 바라보고는 했는데 땅거미가 덮일 무렵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저녁바다 저쪽 하늘 속에서 뭔가 나타났다. 노을 속에서 새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날아오는 중이었다.

박명 속에 가느다랗던 노을이 차차 사라져가고 어둠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두 점들은 가까워졌는데, 어느 아이가 외쳤다.

둘이다. 싸우고 있다.

하늘에서 싸운다.

하나는 우리 매다!

매는 자기보다 몸집이 두어 배는 되어 보이는 날것과 맞붙었다가는 다시 떨어져서 돌고, 또 맞붙어 날개를 치는 것이었다. 매는 수리를 피해서 뭍을 향해 물러서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하나가 위로 휙 날아오르면 더불어 올랐다가 바다를 향해 떨어지면서 서로 엇갈려 잠깐 멈칫해서 부리와 발톱으로 치고는, 치는 사이에 날개를 푸드덕이는 소리가 바람소리 가운데 똑똑히 들렸다. 매는 수리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될 수 있으면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머리 위로 가까이 날아오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매와 수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끊임없이 날개를 치면서 뭍으로 다가왔다. 이제까지 보고만 서 있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도 결기가 가득 차서 일시에 목청을 합쳐 응원하는 고함을 질렀다. 매와 수리가 일단 흩어졌는데, 매는 아래로 낮게 날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개를 치면서 한바퀴 돌고 나서 다시 수리에게로 쫓아 올라갔다. 매가 날개를 퍼덕이며 지나갔을 때, 그 죽지에서 흩뿌려진 피가 잔치 옷으로 갈아입은 마을 사람들의 흰옷 위에 점점이 번져갔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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