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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사회극으로 푼다|태화기독교회관, 매주 수요일 진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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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깊어가는 서울의 밤. 수년만에 되살아난 네온사인의 휘황한 불빛과 퇴근길을 재촉하며 질주하는 자동차들로 밤 8시 종로의 거리는 북새를 이룬다.
거리의 부산스러움을 뒤로 하고 인사동으로 향하는 샛길로 살짝 접어들면 어둠속에서 12층의 흰건물이 빛을 발한다. 바로 사회극(socio drama)이 열리고 있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다.
12층 대강당에는 80여평의 청중들이 막바지에 이른 문홍세박사의 「스트레스와 노이로제」 강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항상 준노이로제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적·외적으로 받고있는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맞아 하나씩 처리해 나감으로써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야겠읍니다』
강연을 마치기가 무섭게 가뭄에 콩나듯 여성들 사이에 끼여 있던 남성중의 하나가 손을 번쩍 든다. 38세의 노총각인데 자꾸 결혼이 늦어져 불면증까지 생겼다는 호소다.
금테안경에 약간 곱슬기가 있는 이 남성은 속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지만 바로 그 덕분에 뒤이어 열린 사회극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누렸다.
드라머라 하지만 일반무대를 예상했다간 큰 오산이다. 막도 없고 정면에 놓인 조명기 1대와 한쪽귀퉁이에 자리한 음향기기가 이 무대를 위해 갖춰진 설비의 전부다.
붉은 카피트가 깔린 그리 높지 않은 무대에는 네모난 탁자 하나와 의자두개, 그리고 실내임을 나타내려는 창문모형들이 소도구로 놓여져 있을 뿐이다.
출연자들의 분장도, 대본도 갖춰져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연출자인 김유광씨(국립정신병원 일반정신과장)가 공연할 연극배우 세사람에게 간단한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준비끝」. 『알아야 하지않느냐』며 당황하는 노총각과 가벼운 실랑이 끝에 무대에 오르게 한 시각은 8시25분. 바야흐로 사회극의 막(?)이 오른 셈이다.
『오늘 오시라고 한 것은 제가 말씀드린 우리 큰형님 때문입니다. 아마도 선을 보면 결혼할 느낌이 들겁니다.』 노총각의 동생(홍순기분)이 맞선 볼 처녀(백동화분)를 데리고 와 주인공에게 소개시키는 것이 첫장면.
조금전까지만해도 망설이던 노총각은 이젠 받아놓은 밥상이라는듯 『좋을대로 해봐야지』하며 너스레를 떤다.
이번 사회극에서 사용된 기법은 역할전환기법. 마술가게기법(인간이 가진 정신적인 모든 것을 파는 만물상회로 손님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고 그 댓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발견할수 있게 하는 방법), 빈의자기법(보이지 않는 사회의 원자를 대상으로 주인공이 얘기함으로써 자아를 찾게 하는 방법), 신체언어기법(인간 내면의 갈등을 신체로 나타내 보임으로써 무의식적인 감정을 표현해 보는 방법)과는 달리 주인공은 자신과 문제를 가졌던 상대역을 하고 보조자아가 주인공이 돼 극을 진행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타인이 돼 봄으로써 상대방에게 가졌던 왜곡의 상을 알게되고 수정할수 있도록 도와주며 좀더 남을 이해할수 있게끔 하는 효과를 지닌다.
주인공은 처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결혼관을 피력하고 왜 결혼이 어려운지를 스스로 분석해간다.
중반에 이르러 주인공은 처녀의 아버지로 역할이 바뀌면서 사윗감(이동수분)을 심사하기도 하고, 다시 처녀의 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간 사윗감으로 변신했다가, 결국에는 원래의 역할-맞선을 보는 입장으로 되돌아가 끝이 난다.
50여분에 걸쳐 진행된 이 극을 통해 주인공은 남자의 성공은 여자의 내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자신은 강인한 의지력과 젊음을 믿고 스스로 보다 우월한 이상적인 상대를 구하고자 하나 사업의 실패·편모슬하라는 불리한 위치때문에 마음에 드는 신부감은 자신을 거부, 결혼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극 도중 『일류 코미디』라며 관객을 웃기기도한 이 노총각은 극이 끝났다는 연출자의 말에도 『10분만 더하자』고 떼(?)를 쓰는 등 무대에서 내려서기를 아쉬워해 또한번 폭소를 자아내기도.
극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관객들은 『너무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느니, 『자신은 생각지 않고 상대방에게서만 너무 완벽을 요구한다』느니 하며 평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회극은 집단안에 공유된 문제를 함께 해결해 본다는 점에서 개인적 문제해결을 모토로 하고있는 심리극과 차이가 난다고 한다.
우리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이 사회극은 6월말까지 매주 수요일 하오 7시부터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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