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유전투자 의혹' 특검 중간 발표] "외압 규명 한계" … 공은 검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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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감사원이 12일 발표한 철도청(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인수 의혹 감사 중간 결과는 그 자체로 의혹투성이였다. 정치권 연루설, 단순 사기설 등이 난무했으나 감사원은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발표된 내용 중 민감한 부분은 대부분 사건 관계자 일방의 진술에만 의존했다. 감사원이 스스로 "사건의 중심에 있다"고 인정한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와 허문석 한국크루드오일(KCO) 대표는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모든 의혹을 풀어야 할 부담은 고스란히 검찰로 넘어갔다.

◆ 감사원이 밝힌 사건 경위=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전대월씨와 허문석씨가 러시아 유전사업을 철도청에 제의했다. 철도청에서는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이 사업을 주도했다.

철도청은 산하의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을 통해 유전사업에 참여키로 하고 지난해 8월 17일 철도재단(35%), 전대월씨(42%),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18%), 허문석씨(5%)의 합작으로 KCO를 설립했다. 이어 9월 3일 KCO가 러시아 유전의 지분 97.16%를 6200만 달러에 매입하기로 계약했고 10일 철도재단 명의로 우리은행에 2400만 달러의 대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측은 650만 달러만 대출해줬다. 계약금 620만 달러가 10월 4일 러시아 측에 송금됐다.

그후 철도청 측은 우리은행의 추가 대출 거부로 잔금 마련이 여의치 않던 중에 러시아 연방정부의 계약 승인이 나오지 않자 11월 15일 계약파기를 러시아 측에 통보했다. 이후 철도공사는 지난 4월 7일 러시아 측과 당초 계약금 620만 달러 중 270만 달러만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철도청이 전씨에게 사례비로 120억원을 주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에 계약금(620만 달러)보다 훨씬 많은 2400만 달러의 대출을 요청한 것도 사례비가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은행 측이 이를 거부하자 대신 전씨와 권씨의 지분을 사업 성공시 120억원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인수했다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왕 본부장이 철도재단 이사장(신광순 당시 차장)의 위임장을 위조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또 유전사업 참여를 결정한 지난해 8월 12일 철도청 사업설명회 결과를 왕 본부장이 김세호 당시 철도청장(현 건교부 차관)에게 구두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유전의 사업성에 대해서는 "전문 기관인 석유공사가 검토한 뒤 참여하지 않기로 했던 만큼 사업성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혹이 집중된 이광재 의원의 연루설에 대해서는 "철도공사 관계자와 이 의원 본인이 한결같이 외압설을 부인하고 있어 수사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졸속 발표와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번 중간발표는 사업의 핵심 참여자인 전씨와 허씨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못한 채 나왔다. 전씨는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도피 중이고 허씨는 인도네시아에서 귀국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감사원은 유전사업 추진과 관련된 상황을 왕 본부장이 제대로 철도청장과 차장에게 보고했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도 "왕 본부장이 구두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김세호 당시 청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세세한 보고를 받은 바 없다"며 "그런 큰 사업을 구두로만 보고받는 기관장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들을 상대로 대질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권 연루 의혹의 한가운데 선 인물인 이광재 의원의 경우는 "철도공사 관계자들과 본인이 연루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감사원은 왜 철도청이 처음부터 사업을 무리해서 추진했는가에 대해서도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왕 본부장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또 전씨와 허씨가 부추긴 것 같다"는 정도의 설명이다. 당초 이 사업을 전씨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권광진씨가 수사 대상에서 빠진 것도 의문이다. 감사원 유영진 특별조사국장은 "외압 여부 등을 밝히기에는 감사력에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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