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급여'로 위장 해외 송금 … 건물 4채 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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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12일 외환 불법 송금, 부동산 투기, 대형 유흥업, 고리사채업 등 모든 분야에 걸친 탈루소득자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이주성 국세청장은 이날 "오늘부터 한 달간 외환 불법 송금자, 소득이 불투명한 과소비자 등 270명을 대상으로 종합세무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국세청은 폭력조직과 연계됐거나 신용카드 변칙거래 등의 혐의가 있는 대형 유흥업소 47곳 중 휴업 중인 2곳을 뺀 45개 업소에 대해 지난 11일 밤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격적인 방문조사를 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 왜 실시하나=이번 세무조사 대상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이른바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람들이다. 탈세 소득으로 해외에 부동산을 사놓거나 해외 투자를 빙자해 외화를 빼돌리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등 건전한 경제 질서를 해치는 경우다. 국세청은 또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시정하기 위해 종합 세무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그동안 소비 위축을 우려해 세무조사를 자제했다. 그러다 최근 경기 회복 조짐을 보이자 탈루소득자에게 종합세무조사라는 칼을 들이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5일 취임한 이 청장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느 세무조사와 달리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 누구를 조사하나=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유흥업소.사채업자 등 거의 모든 부문에 대해 세무조사를 한다. 일단 전체 조사 대상은 270명 수준이다. 국세청은 전산망에 구축된 부동산 거래, 외환 거래, 해외 부동산 취득 자료와 탈세 제보를 통해 불성실 납세 혐의자를 1차 선별한 뒤 현장 확인을 거쳐 최종 대상자를 선정했다.

우선 국내의 탈세 소득을 국외로 빼돌린 불법 외환 유출 혐의자 77명이 대상에 올랐다. 이들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해외로 송금했거나 해외에서 고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사람들이다.

재산 형성 과정이 불투명한데도 소비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고소득 자영업자 27명도 조사를 받게 됐다. 여기에 원금의 수백%가 넘는 고금리를 챙겨온 악덕 고리사채업자 50명과 변칙적인 자금거래를 통한 사전상속 혐의자 23명도 포함됐다.

◆ 세금 탈루 사례=성인오락업계의 대부이며 폭력조직의 조직원 P씨는 서울 소재 한 유흥업소의 실제 소유주이면서 종업원 명의로 이 업소의 개.폐업을 반복했다. 제조업체 사장 C씨는 해외사무소 경비, 급여 송금 등으로 위장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지에 체류 중인 가족에게 돈을 보내 220만 달러에 이르는 고급 주택 3채와 500만 달러 규모의 건물을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조업체 대표 P씨는 신고 소득보다 지나치게 많은 소비를 해 국세청에 의해 탈루 혐의가 드러났다. 그는 부인 소유의 주유소 등을 통해 190여억원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취득하는 방법으로 기업 자금 220여억원을 불법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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