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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분열요소 3중 4중 … 타작하듯 털어 새판 짜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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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14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박지원·문재인·이인영 의원(왼쪽부터)이 최종 후보로 선출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서울=뉴시스]
이인영 의원은 컷오프를 통과한 뒤 7일 본인의 사무실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를 했다. 김상선 기자

“계파 보스들의 보조자로 전락했던 탯줄을 이제야 끊게 됐다. 당당히 주전 선수로 뛰겠다.” 지난 7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예비경선. 당 대표가 되려고 도전장을 내민 5명 중 본선 무대에 오를 최종 후보 3명을 솎아내는 자리였다. 문재인·박지원 양강 체제에서 누가 나머지 한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세간의 관심이었다. 주인공은 초대 전대협 의장이었던 ‘86그룹’(1960년대 생, 80년대 학생운동권)의 기수 이인영(51·서울 구로갑) 의원이었다. 그의 본선 무대 진출로 “쇠락하던 ‘86그룹’이 재기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 의원은 ‘세대교체’를 역설했다.

새정치연합 당권 도전장 낸 이인영 의원

 -컷오프를 통과한 소감은.
 “반란은 시작됐다.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내가 우리 당을 정당 혁명의 길로 이끌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너무 준비된 말처럼 매끄럽게 들린다. 솔직한 심정을 말해 달라.
 “음…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란 생각이다.”

 -우리라 한다면?
 “내 또래의 민주화운동 세대이자 6월 항쟁 세대, 그리고 정치권에 들어온 이들을 말한다.”

 -왜 이번이 마지막인가. 다음은 기약할 수 없나. 표현이 반란, 역적, 형장의 이슬 등 사뭇 비장하다.
 “그렇고 그런 정치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정치하고 싶지 않다. 뻔한 정치 하려면 우리가 정치할 이유가 없다. 정당 혁신 해서 다음 총선·대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일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베 일본 총리의 실제 지지율은 30%밖에 안 되지만, 대안이라는 일본 민주당이 워낙 무너지니 아베 총리가 지난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지 않았나. 그게 두렵다.”

 -일본처럼 한국의 우경화가 두렵다는 건가.
 “당장 올해 한국 경제가 더 좋아질 것 같지 않다. 보수가 집권해도 국민 살림살이가 좋아진다면 무슨 상관인가. 팍팍한 서민의 일상이, 거리를 배회할 젊은이의 꿈이, 주눅 든 40대 아버지의 어깨가 아른거린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를 하고 싶다.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싶다.”

 -낡은 정치가 새정치연합에 만연한가.
 “친노(親盧) 대 비노(非盧)의 대결뿐 아니라 영남과 호남의 편가르기, 최근엔 이른바 ‘새정치’냐 ‘민주’냐라는 신경전까지 3중, 4중으로 분열적 요소가 잠복해 있으며 확대 재생산 중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타작하듯 다 털어서 다시 재편하고 단결의 구심을 만들어야 한다. 세대 교체와 리더십 전면 교체가 절실하다. 콩 심은 데 콩 나듯 친노가 모여 대표를 뽑으면 친노 대표가 되고, 비노가 모여 대표를 추대하면 비노 대표가 될 뿐이다.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나서야 한다. 판을 바꿔야 한다.”

 -본인은 친노가 아니라는 취지로 들린다.
 “내가 친노에 빚진 게 뭔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은 누구보다 앞장서 이어받겠다. 하지만 그 정신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걸 권력으로 삼고, 패권처럼 휘두르며, 독점하고 배제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친노도 아닌데, 어떻게 컷오프를 통과할 수 있었나.
 “난 지난 2년간 중앙 정치무대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2012년 총선 때 최고위원, 대선 때 선대위원장 중 한 명으로 선거에서 패배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낙향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 국회의원이 아니었을 때 나를 기억해주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이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해 4년간 금배지를 달지 못했다). 예를 들면 2011년 4대 강 반대 특별위원장을 맞아 시민사회와 당을 연결하고, 그해 4월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의 무공천을 관철시키고, 또한 오세훈 시장이 물러난 뒤 박원순·박영선의 단일화 과정에서 우리 당이 패배했음에도 추슬러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주도하는 것 등등. 뚝심 있는 내 모습을 좋게 생각하는 선거인단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자기 자랑 하는 걸 보니 정말 정치인 다 된 거 같다.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젠 나를 좀 널리 알려야겠다(웃음).”
 이 의원의 e메일 주소는 ‘liy1987’이다. 그만큼 1987년의 의미가 각별하다.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그는 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6·10 민주항쟁을 주도했고, 같은 해 전대협 1기 의장에 선출된다. 재야 운동을 하다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건 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젊은 피’ 수혈 바람을 타고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갑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으나 4년 뒤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속에 첫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민주화운동의 대부 고(故) 김근태 의원의 적자라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86그룹’의 맏형 격이다.
 “우린 누가 대장이고 큰형이란 게 없다. 수평적 관계다. 동료이며 동지다.”

 -이번 출마가 86그룹의 독립선언인가.
 “더 이상 물 주전자 드는 교체 멤버는 하지 않겠다. 당당하게 주전 선수로 뛰겠다. 모든 과정에서 원로·선배들과 부딪치면서 할 말을 하겠다.”

 -예비경선 결과 범친노 2, 비노 1 구도로 박지원 의원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완주하나.
 “거듭 말하지만 우린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다. 끝까지 간다.”

 -당권 경쟁에서 문재인 후보보다 장점이라면.
 “문 의원, 훌륭하다. 담백한 멋이 있다. 다만 손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세대를 교체해야 한다.”

 -세대교체의 내용이 있는가.
 “계파정치 안 하겠다. 계파의 성(城)을 쌓지 않고 계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력·이권·돈을 모두 부숴버리겠다. 공천권을 사람의 재주로 하지 않고 제도와 시스템으로 넘기겠다. 중앙당을 3권 분립 형태로 운영하겠다. 중앙위원회에 당헌·당규 제정권, 예산배분권, 정책 결정권을 갖게 해 의회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 윤리위원회엔 기강·규율 기능을 강화해 일종의 사법권을 갖게끔 하겠다. 지방에 재정과 인사권을 할애하겠다. 이렇게 권력을 분화하면 계파의 온상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86그룹’의 행적을 보면 다른 정치세력과 차이가 없지 않은가. 특히 지난해 7·30 재·보선에선 기동민·허동준의 다툼으로 ‘패륜 공천’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 대목에서 이 의원은 한숨을 쉬곤 잠시 침묵하다 말문을 열었다) 기동민씨를 광주에서 ‘서울 동작을’로 나가도록 하는 데엔 우리 힘이 작용하지 못했다. 그걸 막지 못한 게 너무 뼈아프다. 그 일로 ‘86그룹’은 씻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가슴 아프다. 저리다. 지지자들께 미안하고 또 죄송하다. 우리에게 다시 그런 패권적 모습이 보인다면 주저 없이 비판해 달라.”

 -86그룹 역시 이젠 기득권 세력 아닌가.
 “우리의 DNA엔 협치와 분권이 있다. 독점·배척은 없다. 지금부터 시작해 최소 10년은 우리 세대가 한국 정치를 책임져야 한다는 소명감이 있다. 못한다면 미련 없이 정치를 떠날 거다. 잘못은 정직하게 시인하고,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으며, 계파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계파를 없애겠다는 발상,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
 “내가 사심 없이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분간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다. 아니 안 돼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이 멋지게 대통령이 되게끔 돕고 싶다.”

 -킹 메이커를 자임하는 것으로 들린다. 일각에선 현 임종석(전대협 3기 의장)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매개로 ‘박원순-이인영’ 연대론을 거론한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의 야권발 대권 한국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다. 박원순·문재인·안철수·김부겸·안희정 등이 무대에 올라 서민과 중산층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면 멋진 광경 아닌가. 나는 기획하고 연출할 뿐 절대 출전하지 않겠다.”

 지난해 8월 박영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했지만 분란 속에 한 달여 만에 무너졌다. 당시 “뒤에서 비대위원장 하라고 부추기곤 결국 박영선을 흔들어 떨어뜨린 거 역시 이인영”이란 소리가 파다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건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박영선 의원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컸다. 많이 응원했다. 하지만 세월호 협상 과정에서 많이 흔들렸다. 더 흔들리게 놔둬선 완전히 망가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얘기한 건 맞다. 그 발언이 상처가 됐으면 진심으로 미안하다. 하지만 강한 분이니,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인 박영선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새정치연합은 중도로 가야 하나, 진보를 강화해야 하나.
 “이념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그저 우리 당이 낮아졌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최저 임금 1만원,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민생 진보’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노선 투쟁보단 실사구시적으로 각 사안에 접근하겠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됐다.
 “정당 해산을 재판으로 하는 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국민이 평가하고 선택하는 게 순리다. 다만 진보의 패권을 위해 민주주의의 절차를 훼손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 앞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 해선 안 된다.”

 -정동영 고문이 탈당해 제3의 당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 당이 혁신을 잘하면 없는 얘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함께하실 분이다. 진보 세력과의 연대는 현 시점에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자강과 혁신이 우선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째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북관계에서 달라진 게 무엇인가. 꿩 잡는 게 매다. 강경이니, 유화니, 온건이니 이런 것에 집착할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크게 실망한 건 민주주의다. 과거 독재정권에서도 권력 집중이 문제 됐지만, 지금처럼 비공식적인 이너서클의 권력 사유화가 표출된 적이 있었나. 시대가 역주행하고 있다.”

 -광복 70주년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활발한데.
 “이승만 대통령보다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 이 대통령에겐 분단의 책임이 있지 않은가. 건국을 하고 정부를 세웠지만 독재를 했던 것조차 인정할 수 없다. 우리가 넘어서야 할 과제를 너무 많이 남겼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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