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재무 "달러 하락에 수출 늘어"…'弱달러' 부추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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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의 조기 종결에 힘입어 주춤하던 미 달러화의 약세 움직임이 다시 빨라지고 있다. 달러화는 12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당 1.156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유로화가 도입된 1999년 1월 이후 4년3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엔화에 대한 달러가치도 이라크전 이후 계속 떨어져 12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백17엔을 기록했다.

달러 약세 방치하나=미국 정부가 뚜렷한 회복 기미가 나타나지 않는 경제 회생의 방법으로 달러 약세를 방관하고 있다는 분석이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7년여간 미국 정부는 '강한 달러'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해외 투자자들의 미국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미국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이보다는 증시 등 미국 자산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선호가 미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해외 자본 유입으로 대규모 경상 적자를 메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스노 장관은 "달러 약세의 결과로 수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동안 미국의 외환 정책과 상반되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이 이처럼 외환 정책을 급선회한 것은 성장률 1%대인 경제를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기 부양책으로 달러 약세를 선택했다는 얘기다.

달러화 약세는 수출 경쟁력을 높여 제조업 회생에 밑거름이 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달러값이 5% 하락하면 금리를 0.5%포인트를 인하하는 경기 부양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달러 약세로 실적 회복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메릴린치의 유럽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이언 스튜어트는 올 들어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는 17%나 떨어졌는데 이로 인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올 해에 0.3%, 내년엔 1.2%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러 약세 어디까지=도이치은행은 "최근의 달러 약세는 지나치지 않다"며 "우리는 달러 약세가 수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종국엔 유로당 1.25~1.3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에디 조지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도 12일 "유로화는 '비정상적인' 약세에서 벗어났을 뿐이며 '과도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달러가치의 하락 폭이 심각한 수준으로 커질 경우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무제한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달러 약세로 인한 외국자본의 미국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경기 회복을 도모하다가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환 전문가들은 달러값이 앞으로 유로화에 대해 최고 20% 정도까지 추가 하락한 뒤 장기 횡보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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