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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로 초득급인생〃일퍼스널컴퓨터「소프트웨어」업계를 한손에…24세의 재일동포 손정의씨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현재의 개인용 컴퓨터(퍼스널 컴퓨터)붐은 소프트웨어 보급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하드웨어가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반해 소프트웨어 쪽은 부자연 스러울 정도로 뒤처져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유통체계를 확립, 수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런 목적에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손정의사장의 말이다.
송정의- 당년 24세.
재일동포 3세.
연간매상고 36억엔(약 1백10억원,웃도는 주식회사 소프트뱅크(동경부천대전구사번정2의 1)의 창설자이자 대표자이다.
일본에서 전자산업에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두 안다.
모를 수가 없다.
그만큼 그의 재능과 행적, 수완은 경이로우며 보통사람의 경지를 훨씬 벗어나 있다.
그가 소프트뱅크를 설립한 것은 22세땐인 81년9월.
처음 두 사람으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사원 80명에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근무자 60명, 그리고 월간매상 3억엔을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경=신성순특파원】
오는 4월엔 종업원 8천명을 거느리는 일본경비보장(주)의「오오모리」 (대삼강언) 부사장을 스카웃해 소프트뱅크의 사장으로 앉히고 자신은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소프트뱅크의 사업내용은 한마디로 퍼스널컴퓨터용 소프트웨어의 도매상이라 할수있다.
개인용컴퓨터는기재(하드웨어)만가지고서는 쓸데가 없다.
사용목적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넣어 주어야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제작은 아이디어와 전문기술을 필요로하므로 수요자들이 직접 제작할 수 없다.
사무용 대형컴퓨터의 경우는 그 용도에 따라 프로그램제작회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주문해서 쓰지만 개인용 컴퓨터의 경우 이미 상품용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상품화된 소프트웨어를 패키지 소프트(Package Software)라고 부르는데 소프트뱅크는 이 패키지 소브드의 중간 도매상인 셈이다.

<메이커·소매상 연결>
일본에는 현재 이 프로그램을 재작하는 이른바「소프트 메이커」가 1백80개사에 이른다.
또 이 소프트웨어 판매하는 소매상도 2천건60개나 있다.
그러나 제작의사와 일선 소매점을 연결해주는 유통기구가 없다.
소프트뱅크가 생기기전에는 각 소몌점이 직접 및개의 소프트메이커와연걸, 한정된 프로그탬용 꽁급하고 있있기 때문에 수요자들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엾었다.
자기가 필요합 프로그랩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소매점을 돌아다녀야했다.
일본에서 상품화된 소프트웨어의 종류는 출납관리, 채산분석, 재고관리등 비즈니스용이나 전자게임용등을 합해모두 5천3백여종.
그러나 수요자들에게 알려진 것은 4백∼5백종을 별로 넘지 않는다.
손사장은 바로 이같은 허점에 착안, 상품화된 소프트웨어의 도매사업에 손을 대 크게 히트 하고있는 것이다.
일본의 개인용 컴퓨터는 82년말까지 1백70만대, 그리고 83년중에 l백20만∼1백30만대가 팔릴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손사장의 소프트 뱅크도 앞으로 계속 고속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소프트뱅크가 계약을 하고있는 유통망은 1백80개 소프트웨어 메이커중 1백65개, 그리고 2천6백개소매점포중 2천5백개에 달한다.

<시장 50%를 휩쓸어>
그러나『계약을 하고있다고 소프트뱅크의 물건만 취급하는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은 50%정도』라는손사장의 말이다.
회사살림 1년반만에 시장의 50%를 장악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수없다.
소프트뱅크의 사업은 이밖에 개인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상품화하는데 중개역할을 하기도하고 소프트웨어정보지『더 소프트 뱅크』등을 출간하기도한다.
일본의 매스컴은 혜성처림 나타나 일본의 소프트 유통업계를 주름잡은 손사장을 「괴물기업가」「신데렐라보이」등으로 부른다.
「신데렐라」라든가 「괴물」이라는 표현이 과연 적합할지는 의문이지만 그가 이제까지 계속 사람을 놀라게 해온것만은 틀림없다.
57년8윌21일 일본 좌하현오서시에서 재일교포인 아버지 손심헌씨(47·조서시전대외정1504의1)와 어머니 이옥자씨(46)사이에 4형제중 2남으로 태어났다.
일본으로 이주한 할아버지의 고향은 대구다.
그가 초특급 인생으로 주변사람들을 놀라게하기 시작한것은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관서지방에서 명문에 속하는 구루메(구류미)대 부속고등학교에 입학, 부모를 기쁘게 했으나 1학년(16세)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1학년 여름방학때 미국 서해안을 여행했는뎨 이때 캘리프니아 대학의 버클리대를 가보고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겼읍니다』
당시의 미국은 히피가 판을 칠때였다.
『캠퍼스에서 드럼통을 절반으로 잘라 악기대신 두드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거미처럼 몇시간이고 벽에 기대 서서 생각에 몰두하는 사람등 가지가지였읍니다.』
여기서 손정의소년이 느낀것은『이처럼 여러가지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자유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캘리포니아대학이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게된 것이로구나』하는 점이었다.
일본의 딱딱한 학력사회가 그의 눈에는 하찮은 것으로 느껴졌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부모는 물론 학교에서도 펄쩍 뛰고 말렸어요』
그러나 이미 미국의 자유로운학교 생활을 향해 훨훨 날고 있는 그의 마음을 잡을수는 없었다.
그해 미국으로 건너가 반년간 영어학교에 다닌뒤 시스코시 남부에 있는 사라몬테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이학교에 있은것은 불과 3주일.

<미고교 3주에 수료>
1학년에 들어가서 3일이 지난후 그는 교장을 찾아가『가르치고 있는것은 모두 아는것 뿐이니 재미가 없다. 2학년에 넣어달라』 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교장도 그의 열의에 못이겨 월반을 허락했다.
2학년, 3학넌과정도 모두 같은 식으로 결국 3주만에 고등학교를 마친 셈이됐다는 얘기다.
『고3과정도 배울게 없으니 대학에 가게 해달라』 고 하자 『18세 이상이되지 않으면 대학엘 갈수 없다』 고거부, 결국 5과목에 대한 검정시험을 보아 한꺼번에 통과하면 보내 준다는 승낙을 받았다.
시험엔 보기좋게 합격했다.

<「음성 번역기」발명>
그러나 고등학교를 월반한데다 검정시험을 치른 사람은 일류학교에는 갈수 없다기에 우선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홀리넴즈대학에 입학, 2년뒤에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대 3학년에 편입했다.
『지금처럼 바쁜 세상에 졸업후에 무엇을 한다는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읍니다. 재학중에 무엇인가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자금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혼자힘으로 무언가 발명을 하기로했다.
『하루에 한가지씩 발명을 하자』 는 목표를 세웠다.
발명 특허에 관한 책을 20권쯤 사다가 열심히 공부했다.
사업이 목적이므로 시장성까지 생각했다.
매일 한건씩 새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어나갔는데 1년간 2백 몇건의 아이더어가 노트에 올랐다.
그중의 하나가 컴퓨터에서 힌트를 얻은 「음성단자번역기」.
물론 그는 기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개념을 차트로 만들어 실제작업은 갤리포니아대학의 기술자들에게 맣겼다.
그의 아이디어에 이 대학의 우주과학연구소나 원자력과학연구소의 교수, 연구원, 프로그래머등이 큰 관심을 갖고 적극 협력해주었다.
『그들은 나의 나이나 경력등은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아이디어가 문제였습니다. 버클리였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만, 협력자들에게는 성공한후 지불한다는 약속으로 시간까지 계산했고 실제로 뒤에 다 갚았읍니다.』
그가 발명한 음성단자변역기를 78년에 완성, 일본유수의 전자메이커인샤프사에 팔았다.
키 보드로 일본어를 넣으면 영어, 독어로 번역되어 말이 되어 나오는 기계다.
현재 샤프에서 나오는 8개국어 전역기는 손씨의 발명품을 더욱 개발한것이다.

<한국이름 계속 사용>
「음성전자번역기」의 발명특허를 판자금으로 그는 79년 미국캘리포니아주에 유니슨 월드라는 회사를 설립해 연구개발사업, 번역기의 판매, 리스 (시설대여)무역을 벌이고 이어 81년에는 일본에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한국이름을 쓰는것 말입니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인이고 한국국적을 갖고있다는 것은 특별히 자랑일수도 없지만 부끄러울것도없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대개 통명(일본이롬)을 쓰는데 왜 한국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고해서 한국에 가서 사업을 할 생각은 아직은 없다면서 그리나 한국의 전자산업의 장래에 대해서는『전망이 밝다』 고 말하고 『무엇보다 교육에 힘을 기울이는것이 중요하다』 고 충고했다.
결혼도 삘라 4년전 버클리에서 만나 결혼한 일본인부인 「마사미」 (대야우미) 씨와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다.
일본속의 한국인 손정의씨의 유특급 인생이 앞으로 얼마나 엄청난 일을 이룩할 것인가에 데해서 그는 웃음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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