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업주·청소년 검은 뒷거래 … 하루 20만원 알바 '술집 일당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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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7월 고등학생 김모(18)군은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선배 박모(20)씨로부터 하루 일당 20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았다. 박씨는 자신이 일러준 서울 은평구의 술집에 가서 친구들과 술만 마시면 된다고 했다. 술값도 주겠다는 말에 김군은 삼촌의 해병대 트레이닝복을 입고 친구 3명과 술집을 찾았다.

 이들이 술잔을 주고받는 순간 경찰이 들이닥쳤다. 김군 일행은 가게 업주와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주점에서 박씨를 시켜 김군 일행을 술집에 보내 놓고는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한다”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경찰 조사 후 김군 일행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별다른 처벌 없이 귀가했다. 하지만 가게 주인 이모(50)씨는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씨는 “영업정지로 퇴직금으로 어렵게 문을 연 가게가 장사 한번 못해보고 폐업했다”고 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술집 일당바리(일용직)’가 신종 아르바이트로 떠오르고 있다. 4일 사단법인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에 따르면 주로 이씨 같은 업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억울하게 영업정지를 맞게 생겼는데 피할 방법이 없느냐”는 식이다.

 충남 공주시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업주 도모(60)씨도 피해를 봤다. 도씨는 “지난 2일 학생 5명이 술을 숨겨 노래방에 들어온 뒤 2분 만에 경찰이 들이닥쳤다”며 “해당 학생들은 미성년자라고 훈방하고 업주만 처벌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음식점 등의 행정처분 구제를 전문으로 하는 대한행정사합동사무소 차용호 팀장은 “최근 고의로 미성년자를 보내는 것 같다는 업주들의 상담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상은 청소년보호법의 맹점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주류 판매를 하다 적발된 업소는 해당 지자체의 행정처분에 따라 2년 미만 영업정지 또는 1000만원 미만 과징금의 처벌을 받는다. 위반이 반복되면 영업장 폐쇄까지 될 수 있다. 반면 청소년은 재학 중인 학교에 통지만 될 뿐 귀가 조치된다. 별다른 처벌이 없다 보니 청소년들 사이에선 위·변조된 신분증 거래도 성행한다. 위·변조 신분증을 빌려줄 때는 5000원, 구입은 2만~3만원 선이라고 한다. 일부 청소년은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으니 경찰을 부르겠다”고 되레 업주를 협박하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에서 청소년 주류 제공으로 음식점이 행정처분을 받은 건수는 총 700건으로 3년 전인 2011년(630건)에 비해 11% 증가했다. 노원경찰서 이미령 아동청소년계장은 “청소년 음주 예방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다 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복근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사무처장은 “미국 일부 주(州)에서는 청소년이 음주를 할 경우 부모에게도 벌금을 물린다”며 “술집에 청소년 확인시스템 등을 도입하고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명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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