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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교안보의 바탕은 ‘국익 리얼리즘’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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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호 02면

을미(乙未)년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광복과 동시에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다. 한·일 수교협정 체결 50주년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에겐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통일의 기틀 마련, 그리고 성숙한 한·일 관계 구축이 급선무다.

 길은 결코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기세 대결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등 군사적 위협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시사하고 나섰다. 남북이 모처럼 대화의 실마리를 모색하려는 시점에 미국은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나섰다. 또 지난해 말 총선에서 압승한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은 주변국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경화로 치달을 태세다.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까딱 판단을 그르치면 국제 미아(迷兒) 신세가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북한과 일본도 2015년의 의미와 상징성을 잘 안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올해를 한반도에 평화·안정을 정착시키고 통일 여건의 기틀을 마련하는 해로 만들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익 우선의 냉철한 리얼리즘에 입각한 외교안보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대한 원칙론을 충실하게 견지해 왔다. 이젠 현실과 실용을 고려한 유연성도 함께 보여줘야 할 때다. 무분별한 화해나 성급한 통일정책은 마땅히 경계해야 하지만, 무조건적이고 강경 일변도의 원칙론도 해로울 수 있다.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서독의 동방정책은 부단한 대화를 통해 동독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 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우리의 대북 정책도 신뢰와 이해, 교류와 협력 증진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화해라는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국과의 정책공조는 필수적이다.

 일본과의 경색된 관계 역시 국익을 위해선 꼭 풀어야 할 과제다. 우경화하는 일본 앞에서 일방적으로 물러서자는 게 아니다. 전범국가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먼저 내놔야 한다는 건 국제적 상식이다. 하지만 이를 대화의 대전제로 삼은 채 하염없이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독도·위안부·교과서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말끔히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반일감정이나 대일 강경론에 함몰돼 실리를 버리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과거사와 미래를 분리하는 접근방식을 찾아야 한다. 구동존이(求同存異·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함)의 지혜로 제3의 길을 모색할 때다.

 이렇듯 북한과 일본을 상대로 한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은 어디까지나 ‘국익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 혼자 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현실과 실용을 존중하는 국민의식의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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