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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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뜻 있는 날이라면 무슨 날일까.
「근로자의 날」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작년「노동 통계 년일」에서 그 점을 확인한바 있다.
한국인은 주당 노동시간이 무려 53.1시간으로 세계 제일을 기록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남자가 주 52.8시간, 여자가 53.5시간으로 세계 어느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무후무한 근면성을 과시했다.
한국 경제의 발전은 바로 그 한국인의 유별난 근면성과 긴 근로시간으로 이룩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근로자의 날」을 진실로 축복하고 그 의미를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한국 근로자들을 제외하곤 그리 흔치 않으리란 생각도 든다.
그런 한국인의 근로 의욕과 근로 정신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역사, 전통과 자연풍토와 민족기질이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현세적, 숙명론적 색채가 강했던 유, 불의 세계관이 ?열한 근로의욕을 길러준 것도 같다.
검약과 절제와 근면을 서구인들은 동양 전래의 신유교정신의 덕이라고 분석한다.
하기는 불교에서도 일일부작 일일부식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의 청규를 지키며 정진하는 관습도 있다.
「노동」의 관념은 서양에서도 오랜 숙성의 과정을 겪어왔다. 신의 천지창조를「노동」관념의 효시로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구약의 세계에서는 노동을 고역으로 보는 어두운 분위기가 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남자는 노동으로 먹고살고, 여자는 산고를 겪는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신약의 세계에선 그것이 바뀌고 있다. 「요한」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때문에 나도 일한다」고 한다.「바울」은 더 나아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와 주위의 약한 사람을 위해 일하라고 권하고 있다. 여기서는 속죄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
서양의 근로 의욕을 높인 것은 종교개혁이후, 특히「막스· 베버」 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 로마적인 육체노동 멸시의 타성속에 아직 생존하고 있다.
노동을 「창조」 와 「의무」의 단계에서 탈피할 수 있게 한 것은 「프로이트」. 그는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이야 말로 정상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가치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노동은 경제적 필요 이상으로「자기실현과 현실을 통합시키는 수단」이 된다.
우리 근대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도 「무보, 역행, 충의, 용감」의 4대 정신 속에 특히 노동의 중요성울 강조한바 있다. 만인?업의 원칙에 따라 일인일기의 전문기예를 닦으라는 것도 그의 주장이다. 「근로자의 날」에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노동을 보람있는 자기실현의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노력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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