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좌담] 북핵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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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김영희 대기자

19일 나온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향후 북핵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본지는 6자회담에서 첫 합의가 나온 것을 계기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하영선 서울대 교수,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초청해 좌담회를 열었다. 진행은 본사 김영희 대기자가 맡았다.

김영희=북한은 2002년 10월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가지고 있다고 했고, 지난 2월에는 핵보유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 북한이 4차 6자회담에서 모든 핵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에 복귀하는 쪽으로 입장을 완화했습니다. 북한은 왜 핵 포기 쪽으로 돌아섰을까요.

정세현=북한 내부 상황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올해는 당 창건 60주년, 광복 60주년인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렵습니다. 경제난을 풀려면 역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선물을 줘야 한다는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교적 성과를 고양시켜 체제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려는 측면도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영선=현 시점에서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번 공동성명이) 북한의 최종적인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인지는 핵 문제 관련 부분(1항)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가장 큰 배경이 경제적인 것이라는 데는 유보적 입장입니다.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는 체제유지와 연관된 부분, 평화체제 구축 부분인 것 같습니다.

김성한=북한은 정권 안보 내지 체제 안보를 최상위에 두고, 이를 위한 그랜드 디자인을 그리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핵포기가 들어가는지, 아니면 핵 협상의 장기화가 한 축을 형성하는지 판단하기에는 이릅니다. 북한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했는지는 추가적인 협상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김영희=같은 차원에서 미국을 봅시다. 대통령.국무장관이 나서서 북한에 모든 핵을 포기하라고 했는데 경수로 논의를 수용했습니다. 대북 에너지 지원에도 동참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하영선=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국무부 차관보)의 기자회견을 보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과 경수로는 핵심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의 모든 핵 포기와 NPT 및 IAEA 안전조치 복귀가 든 발표문 1항의 첫째 항목에 전력투구한 것입니다. 이것만 확보되면 북한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설득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그런 점에서 부시 2기 행정부는 1기 때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1기 행정부 때라면 미국내에서의 설득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2기 행정부는 1기에 비해 외교적 수단, 군사전보다는 정치전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정세현=동감입니다. 그것 외에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도 관련돼 있다고 봅니다. 대외적으로 이라크 문제와 이란 핵문제가 꼬여 있고 대내적으론 허리케인 재해 문제로 인기가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북핵 문제에서 어떤 수순이건 간에 성과를 낼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성한=미국에 이란 핵문제와 북한 핵문제가 동시에 악화되는 것은 부담입니다. 그런 만큼 북핵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 때문에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관련 국가.국제사회에 형성되는 것도 고려한 것 같습니다.

김영희=공동성명을 보면 북한의 모든 핵포기 약속과 평화적 핵활동 존중 얘기가 동시에 나와 일반인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북한은 20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경수로를 제공해야 NPT에 복귀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성한=공동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한 상황에서 경수로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세현=공동성명만 보면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고 신뢰를 회복하면 나중에 경수로를 주겠다는 것인 만큼 선후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20일의 북한 외무성 담화는 경수로를 줘야만 NPT에 복귀하는 순서를 밟아나겠다는 식입니다. 이것이 향후 북핵 해결의 로드맵을 짜는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카드인지는 두고봐야 하지만 물밑 접촉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정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문제는 11월 열리는 5차 6자회담의 핵심 쟁점이 될 것입니다. 이번 성명이 말 대 말, 공약 대 공약의 합의서라면 다음 회담에선 행동 대 행동, 행동 대 보상의 문제가 집중 논의될 것입니다.

하영선=이번 합의는 서곡이 연주된 것으로 봅니다. 피날레로 가기 위해선 험준한 지뢰밭을 지나야 합니다. 일찍 샴페인을 터뜨릴 상황은 아닙니다. 지뢰밭이 제거되기 위해선 핵 포기의 단계 등이 합의돼야 합니다. 북한의 담화는 핵무기 포기부터 시작하는 미국의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북한의 담화는 북.미 관계 정상화→평화체제 구축→핵포기 순으로 돼 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김성한=북한의 담화로 이번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절묘한 수정안을 낸 중국이 제일 당혹스러워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번 담화를 놓고 하루 만에 다시 비관적인 쪽으로 돌아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실무적 차원에서 대북 설득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영희=북한 외무성 담화로 이번 공동성명에 든 원칙을 행동으로 옮기는 문제와 관련한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현=북한은 지금까지 내놓았던 안을 뒤집은 적도 있지만 고수하기도 했습니다. 북한도 경수로가 먼저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서 담화를 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북.미 양자 협상을 병행해 미국이 북한을 중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야 미국 방식으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하기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하영선=북핵 포기가 든 이번 합의는 북핵을 동결한 제네바 합의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순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북한 입장에선 훨씬 많은 것을 얻지 않고선 핵을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은 그 한 상징으로 경수로를 얘기하지만 실제 행동 순서 협의에 들어가면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김영희=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선 미국이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공동성명의 문안으로 볼 때 관계 정상화 부분은 제네바 합의에서 암시됐던 것에 비해 훨씬 적극성을 띠고 있는지요.

정세현=이 문제는 힐 차관보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속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북한에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그가 평양에 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힐 차관보를 만나준다면 북.미 관계 개선 속도가 빨라지겠지만 외무성의 김계관 부상이나 강석주 제1부상만 만나면 미국도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김 위원장을 만나면 미사일, 인권 문제 등도 쉽게 해결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영선=미국에 이번 합의의 초석은 북한의 모든 핵 포기 약속과 NPT 및 IAEA안전조치 복귀입니다. 이것이 원칙적으로 이뤄지면 관계 정상화는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영희=이번 발표문에는 북.일 관계 정상화 부분도 들어 있습니다. 최근 총선에서 압승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북.일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데요.

김성한=북.일 수석대표가 이번에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공동성명에서 평양선언을 강조하고 있는데 북.일 수교 필요성을 반영한 것입니다. 일본 입장에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대세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은 의지가 들어 있다고 봅니다.

김영희=이번 합의가 지금부터 남북관계의 새 추동력이 될까요.

정세현=경제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바로 나타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북.미, 북.일 관계가 개선돼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에서 평화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이지만 미군의 위상과 역할 변경이 있어야 합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문제입니다. 복잡하지요.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요구에 북한이 입장을 수정할 수 있도록 권장하기 위한 남북 간 고위급 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돼야 합니다. 이들 문제는 장관급회담이나 국방장관회담에서 논의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대북 지원 규모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대북 발언권도 신장되고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북한의 자세 변화를 유도해 낼수 있을 것입니다.

하영선=남북 정상회담은 어느 시점에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북한의 핵포기와 관련한 로드맵이 나온 다음에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영희=이번 성명은 한반도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해 별도 포럼에서 협상을 한다고 했습니다.

하영선=참가 범위와 관련해선 현실적으로 4자(남북, 미.중)가 하는 방식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북한이 주장하는) 평화체제는 아주 쉽게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북한이 무엇에 대해 불안해합니까. 1970~90년대에 비해 북은 남쪽으로부터 위협을 덜 느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얘기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력, 제도전복 문제가 생존과 관련된 최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선 주한미군이라는 하드웨어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동맹 시스템 운영 방법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일단 없어져야 합니다. 북한은 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담보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김성한=평화체제 문제는 내부적으로 심도있는 토론이 필요합니다. 미국 변수를 제쳐놓고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를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한.미동맹의 비전을 설정해 놓지 않고 이와 관련한 큰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다고 보입니다.

정세현=북한이 질적으로 변해야 우리가 생각하는 쪽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북한이 체제 불안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혁 개방을 촉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미국이 북한의 변화를 통해 핵문제를 푸는 여건을 조성하는 식으로 나온다면 평화체제 문제 등도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정리=정용수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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